안창순(前 곡성중앙초등학교 교사)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다. 한 겨울의 때 아닌 안개지만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곡성읍은 섬진강 때문인지 예전부터 안개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안개를 좋아해서 한치 앞을 못 볼 정도로 짙은 안개가 낀 날이면 어머니 심부름을 간다거나 책보자기를 허리에 차고 학교에 갈 때, 신비스런 마음으로 두 손을 휘적거리면서 길을 헤엄쳐 가곤 했다. 안개 낀 학교운동장에서 숨바꼭질도하고 안개 속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안개 걷힌 하늘은 또 어찌나 맑고 푸르던지…. 이래저래 안개 낀 날은 신비롭고 깨끗하고 신나고 재미있었다.

며칠 전, 한 때 교육민주화운동으로 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건강관계로 나를 찾아왔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이제 나이도 들고 했으니 서로 간에 호칭을 호(號)로 하잔다. 그러고 보니 나만 호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그날 밤을 새가며 호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이 자연(自然)이다.

이제 우리끼리 만나면 이름대신에 각자의 호인 운당(雲堂), 해강(解江), 학산(鶴山), 평뫼(平뫼), 그리고 자연(自然)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내 호를 자연(自然)으로 정한 것은, 북에서 동으로 흘러내리는 섬진강과 남쪽의 보성강 그리고 서쪽의 동악산 형제봉이, 마치 삼면이 바다요 한 면이 육지인 삼천리금수강산처럼 아름다운 내 고향의 자연환경을 그 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정고을에 청정인(淸靜人)이 많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각종부동산투기와 아들의 병역면제 등이,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사적유용과 관용차임의사용, 아파트실거주조건위반 등이 원인이다. 소위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국무총리후보자와 헌법기관의 수장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이럴진대 다른 것은 더 말해 무엇 하랴! 하기야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탈세, 병역면제 등이 국회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이렇게 들추는 곳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니 가히 부패공화국이다.

열아홉 살 어린나이에 장원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요?”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서울대학교를 나와 19살에 고등고시에 수석 합격했고 이동흡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법학 석사이다. 둘 다 수재고 부지런하단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상 이득을 이룩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학벌과 부지런함이 개인적 성취차원을 넘어서 탐욕의 수준으로까지 번지면 공동체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제발 내 고향 곡성에는 공직자는 물론 각종사회단체의 리더나 마을책임자 및 말단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무식하면서 용감하여 일을 그르친다거나 넘치는 배움으로 사리사욕을 챙긴다거나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교만 등으로 지역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사람보다는 깨끗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높은 의식이다. 어느 큰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다. 군민 모두의 수준 높은 의식으로 천혜의자원인 곡성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천만년 보존하고 그것을 닮은 맑고 착한 사람들로 온 고을을 채웠으면 좋겠다.

오늘아침처럼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긴 호흡을 해도 아무 탈 없는 영원한 내 고향 청정고을 곡성이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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