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프리미엄, 도전자-경선 없이 본선 진출 가능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가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문제가 최근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기는 내년 지방선거를 놓고 벌이는 주도권 싸움의 시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앙 정치에 예속되는 것을 막고 '생활정치'를 구현해야 할 지방의회가 여·야로 갈리어 정쟁을 일삼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대의명분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펴보면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겠다는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천제가 폐지되면 정파로 나뉘는 투표 성향이 사라져 오로지 후보의 '인물'을 보고 투표하게 되는데 이런 구도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현직이 절대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현직 프리미엄'을 확실하게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당 공천제 폐지에 따른 '다자(多者) 구도'도 노릴 수 있다. 후보가 난립하는 선거판에서는 얼굴이 많이 알려진 현역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당 공천제 폐지를 희망하는 것은 현직 자치단체장 뿐만은 아니다.
현역에 도전해야 하는 출마 예정자들은 공천권을 놓고 벌여야 하는 '예선전' 없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천제 폐지를 반기고 있다.

현직 자치단체장들과의 당내 경쟁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공천제가 유지된다면 자칫 본선 무대도 밟지 못한 채 꿈을 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기초선거의 정당 공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동상이몽'을 꾸는 셈이다.

195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기초단체장 선거, 기초의회선거로 확대하며 실행된 정당공천제는 그동안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밀실공천으로 인한 부정부패 등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민주당은 이번 투표 결과를 선거법에 반영해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당인 새누리당에 조만간 선거법 개정협상을 제안할 계획이다.

제도 도입을 위해선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한 여야 협의가 필수적인데 문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향방이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어 새누리당도 이 문제를 본격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물밑에서 당내 의원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어 당론을 결정하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당의 책임정치의 후퇴와 돈·지연으로 당선되는 구태정치를 부활시키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위험이 있다는 반대측의 비판도 만만치 않아 이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천제 폐지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여성 정치인 등 소수자의 정치 참여 제한이다.

정당공천제가 도입되지 않고 치러진 첫 지자체 선거(1991년)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전체의 0.9%에 불과했다.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도입(2006년) 이후 여성 비율은 20% 이상으로 늘어났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여성의 정치참여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때문에 민주당은 ‘여성명부제’를 대안으로 마련했고 새누리당은 비례대표를 기초의회의원 정수의 3분의1로 상향조정하고 이 중 절반을 여성에게 배정토록 대안책을 내놨다.

여성명부제는 기존 비례대표 정당명부를 여성명부로 대체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출마를 희망하는 여성 후보자들은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 추천을 받아 선관위에 등록하면 선관위는 이들을 모아 여성명부를 개방형으로 작성하게 된다. 조직이 큰 특정 집단이나 대형교회 여성들에게 유리한 제도로 추가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참신한 정치 신인들의 정계 입문도 어려워진다.

기초의원의 경우 정치적 신념과 공약·정책이 아닌 돈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지역구 행사에 얼굴을 비치고 큰 돈을 기부하는 것이 더 이름을 알리기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결국 돈과 배경이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치단체장 선거는 현역의 프리미엄이 너무 크다는 점도 문제다.

공천제가 폐지되면 정파로 나뉘는 투표 성향이 사라지고 ‘인물’을 보고 투표하게 된다. 여기에 후보까지 난립하게 되면 얼굴이 많이 알려진 현역의 프리미엄은 절대적이다.

후보자 난립 우려도 크다.
정당공천제는 그동안 출마를 원하는 여러 후보를 한 명으로 압축하고 1차적으로 걸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정당공천제가 없어지면 이 기능이 사라지게 된다. 다수 후보들이 난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유권자들은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표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다수 후보가 난립하면 후보들 간 이익과 노선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자칫 돈이 매개가 된다면 지역선거 자체가 혼탁해질 수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후보에게 일종의 ‘보상금’을 받기 위해 출마했다가 사퇴하는 경우의 수도 제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여야는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고 음성적 ‘뒷거래’도 방지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 기초의원은 “솔직히 자신의 지역구 기초의원이 누구인지 공약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유권자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기 보다는 대부분 당의 공천의 믿고 투표를 했을 텐데 앞으로는 정치적 신념과 능력만으로 학연·지연·재력을 내세우며 얼굴을 알리는 지방 토호세력을 제친 당선이 가능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 지역 정치권 '정당공천' 존폐 엇갈린 반응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존폐를 둘러싼 지역 정치권의 반응이 확연히 갈리는 모습이다.

존속과 폐지 모두 각각의 장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워 개인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뚜렷한 입장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인사의 경우 지난해 대선 당시 소속정당에서 모두 공천제 폐지를 약속한 점을 감안해 폐지에 무게를 두고는 있지만 다양한 루트를 통해 드러나는 속내는 겉으로 드러낸 의견과 적잖은 차이를 노출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이 공천제 폐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각각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인의 정치적 이득 또는 소속 정당의 뜻에 따라 정당공천 존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역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 찬성은 '중앙정치의 사병화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역 프리미엄'의 극대화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체장으로 활동하며 다져온 지역내 인지도와 지지도를 적극적으로 선거에 활용하겠다는 것. 공천제가 폐지되고 정당의 후보검증 시스템 부재로 지방선거 후보군 난립 상황이 생길 경우 현역 단체장·의원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 같은 분석은 정당공천 존속의 이유 중 하나인 '정치신인의 기득권 진입 활성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이와 함께 원외에 있는 당협·지역위원장들이 공천제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공천제가 폐지되면 기초단체장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협·지역위원장보다 우월한 지역 내 정치적 지위와 세를 갖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존속을 주장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역 내 각종 행사의 주최가 단체장인 만큼 당협·지역위원장의 얼굴·이름 알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 한다. 이와 맥을 함께하며 지역 정가 일각에서 나오는 관측은 공천제 폐지가 기초단체장과 현역의원간 정치적 힘의 균형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외 위원장의 경우 차기 총선 등을 염두에 두고 정치활동을 하는 만큼 기초단체장 등에 대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만 원외의 '핸디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폐지를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지역 일각에서는 공천제 폐지에 찬성을 표한 당협·지역위원장 역시 지난해 대선 당시 소속 정당 대선 후보의 공약 이행이라는 점에서 찬성입장을 표했지만 속내는 반대쪽에 기울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또한 여야 공히 내부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은데다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내는 유보적이거나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져 정당공천이 폐지되기까지는 적잖은 험로가 예상된다.

우선 정당공천폐지를 위해서는 여야의 당론확정이 필수다.

이미 민주당에서 당론을 확정하고 여당을 압박함에 따라 새누리당에서도 조만간 당론을 완성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4·24 재보선 과정에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 폐지를 실천한데 이어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치쇄신특위에서도 이같은 의견을 피력했던 새누리당 역시 결국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여야의 당론이 확정되면 이후 각 정당은 구체적인 협상안을 만들어 국회 정치쇄신특위 테이블에 올려놓고 최종안을 도출하게 된다. 이어 선거법 개정을 위해 해당 상임위에서 또다시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거쳐 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오는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최대한 빠르게 심의 결정된다면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반대론자 외에도 여야 내부에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명분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법 개정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에겐 개정에 따른 실익이 별로 없다. 오히려 기초의원 및 기초단체장을 장악하기 어려워져 향후 총선에서 기득권을 내세우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잠재적 경쟁자인 현직 기초단체장들의 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정치쇄신특위 또는 상임위 논의과정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타 정당에 책임을 떠밀며 무산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거법이 개정 된다 해도 내년 지방선거부터 정당의 영향력이 실제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여론에 떠밀려 선거법 개정까지는 진행될 수 있지만 각 정당 또는 현역의원들이 또 다른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세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측은 향후 정당공천제 존폐 논란이 국회 정개특위, 상임위·법사위 회의 등 법 개정 절차를 거치며 '좌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과 맞물리며 일정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논의가 생각보다 빨리 진전되고 구체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종대 기자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