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한 사물이나 사안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지금 현재만 본다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역사를 파헤치기는 매우 어렵다. 알 수 있는 것 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기록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는 덮고, 유리한 과거는 과장한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은 찾기도 어렵고 확인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지방자치도 지금의 현실만 본다면 그저 한심할 뿐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과거 역사를 파헤쳐 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미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지방자치 제도가 상당히 오랜 기간 시행되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의 지방자치 전통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국토가 분단되면서 국가적 정체성이 강조되고 지역적 정체성은 억압되었다. 독재정권하에서 지방자치는 아예 생소한 용어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지역은 여전히 통치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 자치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한국 전래의 정치적 전통이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왕조체제였지만, 수령(守領)-향리(鄕吏)-지방사림(士林)으로 구성된 다원적 지역사회 통치구조를 유지했다. 덕분에 중앙집권에 필수적인 군사력이나 교통, 통신 등의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앙이 효율적으로 지방을 통제하고 지배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 중앙과 지방간의 권력균형이 깨지면서, 즉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의 과도한 수탈과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지방의 견제력이 약해지면서 민생은 피폐해졌고, 그 결과 외세의 침탈을 이겨낼 힘을 잃고 왕조가 붕괴했다.

일제는 조선 전래의 다원적 지방통치 제도와 문화를 제거하고, 총독부가 관료와 경찰을 동원해 각 마을 단위까지 속속들이 침투해 통제하는 중앙집권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읍면제 행정개편을 통해 수직적이고 인위적인 행정구조를 만들었고, 전통적 자연부락위주의 생활권 동리(洞里) 자치를 말살시켰다. 형식적으로 일부 지역에서 도회, 읍회, 면회 등의 자치의회를 시행했지만, 식민지배를 강화하고 보조하기 위한 형식적 자치에 불과했다.

해방 후, 독재 정권은 수도가 지방을 일사분란하게 관리하는 식민지 지방통치 방식을 그대로 계승했다. 독재 치하에서 지방은 자율과 자치의 공간이 아니라 지배와 동원의 공간이었다. 새마을 운동처럼, 중앙정부의 권력이 마을 단위까지 침투해  벌이는 범국가적 지역사회 운동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의 자발성을 무시한 채 중앙의 강요에 의한 지역사회 운동은 지속되기 힘들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새마을 운동은 힘없이 종식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부활되었지만, 갈 길은 험난했다. 지방자치를 폄하하고 무시하기는 독재권력이나 민주권력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지방자치를 통해 중앙집권으로 발생하는 권력남용과 부조리와 비효율을 견제한다거나 보완해야한다는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수이던 진보이던 모두 자신들을 견제할 지방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방자치 제도는 중앙정치의 하부단위로 이용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정치권에서 지방자치 담론은 사라지고, 대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등의 공약을 통해 지방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경쟁이 펼쳐졌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지배되고 중앙의 관행을 답습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었다. 주민의 불신과 무관심 속에서 시행되는 지방자치는 지방기득권의 제도화와 중앙정치의 폐해를 지방에까지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결과 지방자치의 확산과 정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극히 미미한 현실이다.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나 지역균형이 공허한 정치적 슬로건으로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적 책임이다. 그럴려면 우선 이 땅의 지방자치 역사를 바로 세워, 지방자치에 대한 현재의 편견과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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