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석(발행인)

 

‘올 벼농사 6년 만의 대풍’ 지난해 쌀 작황 관련 신문기사 헤드라인이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올 여름을 보내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벼농사도 대풍’이란 신문기사 헤드라인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올해는 태풍 한번 지나가지 않고 병충해 또한 지난해보다 적어 벼농사는 대풍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대풍 소식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올 6월 말 현재 정부 쌀 재고량은 175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42만톤이 많다. 여기에다 농협미곡처리장과 일반 정미소 등 민간이 보유한 재고미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보니 풍년농사를 기뻐해야 할 농민과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85년 국민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128.1㎏이었으나 2015년에는 62.9㎏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소비량이 30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감소한 반면  지난해 쌀 생산량은 432만 7천톤으로 2014년보다 8만 6천톤이 증가했다.

이처럼 쌀 소비량은 자꾸 줄어드는데 수요 대비 생산량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 쌀 재고 증가는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다고 쌀 생산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기업들에 의해 농산물의 독점이 심화하는 시점에서 쌀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3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세계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화려한 뒤안길에는 우리 농업과 농민들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식량자급과 인력공급으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식량주권 확보와 환경보전, 국민정서 함양과 전통문화 보존 등 그 역할은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만약 농업인들이 너도나도 본업을 포기하고 농토와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든다면 농촌은 몰락하고 농토는 황폐화 될 것이며 도시는 인구의 과밀화로 주택, 교통, 환경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데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오히려 농촌을 유지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것이 자명하다.

혹자는 농업투자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경쟁력 있는 제품 생산에 주력하여 수출로 번 외화로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먹거리의 수급이 외국의 농산물 작황이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도래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되짚어 볼 일이다.

우리의 옛 풍습 중에 과수원에서 과일을 수확할 때 몇 알은 그대로 나무에 남겨두는 것과 벼 추수 때에도 이삭을 전부 다 줍지 않고 새들이나 짐승을 위하여 남겨두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하찮은 짐승일지언정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동안 먹거리에 궁한 새들과 짐승들에게는 농부들이 들판에 남겨둔 과일과 이삭이 어려운 겨울나기에 다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착한 우리의 선조 농부는 매년 반복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듬해 봄에 찾아올 보릿고개를 모를 턱이 없었지만 자연의 섭리와 인간적 순리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순박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우리 농부들을 투사로 변모시켜 길거리로 몰아낸 데에는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해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치부해 온 정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동안 우리 것에 무관심해왔던 상당수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성큼 다가선 가을을 느끼게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의 더위를 풍년의 기대로 달래가며 다가올 추석은 그래도 풍성하리라 여겼지만 쌀값 폭락과 김영란법 시행 등 눈앞에 닥친 우리 농촌의 현실은 비통하기만 하다. 우리 농민들이 골 깊은 주름을 펴고 활짝 웃는 즐거운 추석은 언제쯤일지.,, 이래저래 농민들에게 미안한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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