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해익(곡성군 징수팀장)

 

죽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이라고 말한다. “세금 걷는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일찍이 말했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지만 그 의무를 반기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로 없을 것이다.

납세자와 함께 세무행정을 펼쳐 온 지 팀장으로 12년이 넘었다. 그동안 줄곧 세무업무를 봤던 건 아니지만 남모르는 어려움이 꽤 있었다. 특히 세금 부과와 징수 분야에서 징수업무를 할 땐 더욱 그랬다. 부과와 징수업무 담당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1년 지나면 3년은 늙는다고 말한다.

물론 주무관 시절 읍면에 근무하면서 산업팀이나 총무팀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나는 군청근무 보다는 읍?면에서 세무 이외의 업무를 더 많이 보았다. 부과와 징수를 해야 하는 세무업무보다는 주민들과 어울려 근무하는 편이 적성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장근무 12년 기간 중에서 순수한 세무업무만 본 것은 9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어려움은 꽤 많았다. 날이 갈수록 납세자들이 납부를 기피하고 탈세방법도 다양해져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또렷한 사건이 하나 있다.

난 세무업무에 뜻을 가지고 20년 전 전직하여 세무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납세자들을 찾아다니며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였다. 해가 거듭 될수록 납세자들이 따지고 고함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짜증나고, 업무에 의욕을 잃으며, 전직(轉職)을 후회하였다. 주민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복지나 산업행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그리워졌다.

사회복지, 농업, 주민등록 업무를 볼 때는 주민과의 어울림이 소통으로 이어지면 주민들은 채소나 과일 등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한 소통들은 업무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지 모른다. 배추 한 포기를 받아들고 세상을 다 껴안은 느낌은 소통해 보지 않는 직원들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무업무 자체가 체납에 대한 자동차번호판 영치와 부동산?통장 압류 등을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잘 설명하고 말씀드려도 납세자들에게 짜증 섞인 말을 들을 수밖에 없고 어쩔 땐 다짜고짜 퍼부어대는 욕설을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

체납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뉴스다. 어찌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나도 뉴스를 보다보면 뜨끔해지는 경우가 있다. 날이 날마다 고위층 공무원과 국회의원, 부자들의 고액 탈세소식이 들려오니 말이다.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세금납부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이고 뿔이나 있다.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다른 동료와 함께 숙박업을 운영하는 곳을 방문했다. 세금이라는 세금은 한 푼도 납부하지 않은 곳이었다. 결국 재산을 압류도 했지만 세금을 납부할 생각을 하지 않아 부득이 자동차번호판을 영치하자고 했다. 강변에 위치한 숙박시설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승용차 번호를 영치하고 다른 업무를 보고 있는 중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숙박업 주인이 사무실에 와서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운다고 빨리 들어와 보라는 것이었다. 급히 방향을 돌려 사무실로 돌아 왔다. 납세자는 술에 취해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 목이 쉰 채 씩씩거리며 왔다 갔다 서성이고 있었다. 처음 본 체납자였지만 큰 키와 험상궂게 찌푸린 얼굴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럼에도 아무 일도 아닌 척 납세자에게 다가가 앉았는데 칼을 들이댔다. 순간 위협을 느끼며 책상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들고 있던 칼이 책상 위 유리에 떨어졌다. 쨍그랑거리며 책상 위 유리판이 산산조각 났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직원들이 달려와 체납자를 뒤에서 껴안아 위험한 상황을 넘겼지만 얼마나 놀랬는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진정이 된 뒤에 업무방해죄로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고 하자, 그 험악한 체납자가 착한 주민으로 돌아와 울며불며 횡설수설 말을 꺼냈다.

내가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다 망하고 고향의 강변에 위치한 숙박시설을 인수했는데, 지난해 여름 홍수에 제방이 무너져 건물이 물에 잠겨 수리할 돈이 없어 장사도 안 되고, 저녁에는 도시에 가서 대리운전을 해야 되는데 아무리 세금을 안 냈다고 해도 너무했다고, 술 한 병 먹고 와서 화풀이로 따지려고 왔는데, 경찰에 신고하면 죽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자초지종 들어보니, 재작년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내년까지 집행유예 기간인데, 내가 교도소에 가면 병이 나서 누워있는 부인은 누가 병간호를 할 것이고, 애들은 학교를 누가 보낼 것이냐며, 자네들 정부미(공무원)는 절대 우리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횡설수설하다가 술에 취해 사무실에 누워 버렸고 그를 등에 업어다 숙직실에 재웠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체납자를 퇴근 무렵이 되어 깨웠다. 아직 술이 완전하게 깨지는 않았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오랫동안 망설이다 한마디 던졌다.

“체납자들은 행복하지 말아야 한가요?"

그가 내뱉은 말이 뼛속 깊이 파고 들어왔고, 딴죽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시금 뉴스나 신문, 청문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아동 성폭력,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비리, 다운 계약서로 탈세 따위의 기사에서 그는 자기를 빗대며 횡설수설했다.

이야기를 다 들어줬더니 결국 그는 미안하다며 대리운전해서 형편 풀리는 대로 납부하겠다고 하면서 지금 돈 벌러 가야 되니까, 빨리 번호판을 붙여 달라고 했다. 굶어죽을 판이라는데 어쩔 수없이 번호판을 붙여 주고 우유와 빵을 산 비닐봉지를 차에 넣어 주었다. 큰 덩치에 쑥스러운 듯 방향도 없는 인사를 꾸벅하고 갔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생활의 막다른 골목에선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지방세 담당 공무원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납세자들은 세상과의 끝없는 경쟁 속에서 행정제재를 당하며 살아야 하는 삶 자체가 체납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법과 행정규제도 소중하지만, 삶이 더 우선이구나.’라고 되뇌었다.

체납자의 여러 가지 형편과 다양한 사정을 감안해서 체납처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납세자들은 지방세를 집행하는 공무원들과 비교해 언제나 사회적 약자다. 세무행정도 약자의 편에 섰을 때 그 힘이 살아난다. 지금 우리의 세무행정이 철저히 납세자들 편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좀 더 친절하게,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배려하는 마음으로 체납자의 삶을 헤아려 어루만져 주고, 그들을 대변해 주었으면 한다. 체납자들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 갈 수 있도록, 우리의 고객인 납세자들이 순간순간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지방세 체납 공무원들이 선량한 체납자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면 좋겠다. 납세자가 행복하지 않고는 우리 지방세 담당공무원들도 결코 행복할 수도 없고, 체납자가 불행한 세상은 절대 아름다운 세상도, 우리 모두가 꿈꾸며 노력하는 선진국이 될 수도 없다.

곡성군의 지방세 업무를 보면서 체납자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로, 납세자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세무행정을 변함없이 펼칠 것을 굳게 다짐해 본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