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 홍(담양군 참여소통담당관)

요즈음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돌파한 한국관광공사 해외홍보 영상 시리즈 '한국의 리듬(Feel the Rhythm of KOREA)' 이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정부기관인 한국관광공사가 '이날치밴드' 음악에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춤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솔직한 소통의 도구라는 의미)의 춤사위를 입혀 배포한 영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정부 홍보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치 밴드의 곡 <범 내려온다>는 국악이나 판소리를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만 여겼던 젊은 층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층 중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이 곡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시로 꺾이는 창법과 몸이 막대기처럼 움직이는 이른바 '좀비 춤'은 그냥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신난다. 중독성으로 치면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저리가라다.

이중에도 압권은 '이날치'라는 범상치 않은 밴드 이름이다. 밴드 이름을 듣은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엔 '이날치'가 사람 이름인지도 몰랐다. 판소리 느낌이 나도록 입에 착착 들러 붙게 만든 신조어인 줄로 알았다.'이날치!' 지금 시각으로봐도 참 멋진 이름이다.

'이날치'(1820년~1892년)는 조선 후기 8대 명창으로 본명이 '경숙(敬淑)' 이라는 것과 줄타기 등 기예가 뛰어나 날래다는 뜻으로 '날치' 로 불렸다고 한다. '이날치'는 내가 지금 살고있는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에서 출생했다.(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음) 담양 창평 유씨 집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남사당패를 쫓아가 줄광대가 되었다.

'이날치' 가 처음에는 박만순의 고수로 북을 잡았으나 얼마지나 그로부터 소리도 배웠다. 그러나 박만순 성품이 오만하여 열살이나 더 많은 이날치를 심하게 부려 헤어졌다. 이후 '이날치' 는 서편제를 창시한 박유전 수하로 들어가 직계가 되었다.

'이날치' 는 성량이 거대하고 기법이 출중하여 나팔소리와 새소리는 실음 그대로를 방불케 하였다. 서편제 판소리 유파에서 반드림제 창법(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에 드는 판소리 창법) 을 개발하였고 서편제 거장이 되었다.

'이날치' 는 서민적인 소리꾼으로 이름이 높았다. 민중 애환이 스며 무속 기운이 강하다는 평가이다. 그런 '이날치' 소리를 통해 동편제와 서편제가 섞이고, 완고한 신분적 굴레가 한 꺼풀 벗겨지면서 모두가 흥에 취했다.

'이날치' 는 명성을 얻은 후 많은 제자를 길러 판소리 계보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제자로 김채만, 김창룡, 정정렬 등 명창이 있고, 전도성 박동실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날치'는 조선말기 신분사회에서 자신 재능으로 신분의 굴레를 벗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날치가 신분의 굴레를 벗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판소리를 즐기는 청중이 보다 대중화 되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보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상업적인 공연이 가능하게 되어 '이날치' 는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었다.

'이날치' 의 당시 대중과 소통이 가능했던 점이 지난 날 '이날치' 가 요즈음 '이날치밴드' 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날치밴드' 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판소리와 팝이 자연스럽게 섞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국악과 판소리를 대중과 만나는 계기가 되게 해 주었다. 지금 '이날치밴드' 에 어깨를 들썩이는 이들이라면 지난 '이날치 판소리'에도 어깨를 들썩일 것이다.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문화 판소리가 '이날치' 를 통해 젊은 층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담양군은 인문학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판소리도 인문학의 일종이다. 그 판소리 가사를 보면 인문학적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조선중기 가사문학도 노래처럼 읊으면 일종의 판소리이다. 사실 판소리는 지금 젊은 층이 즐겨 부르는 랩과 비슷하다.

판소리 연구나 통사를 들춰 보면 담양 출신의 전설의 명창이 많다. 담양출신은 아니지만 대한제국기 이날치 제자로 창극단과 협률사에 참여한 판소리의 명창 김채만(화순출신) 소리는 광주 담양 일대에서 전승된 서편제 판소리 대표적인 유파가 되었다. 서편제 맛을 알게 한 한승호 명창도 담양 국악인 집안이고 거문고산조 한갑득 선생도 담양 국악인 집안이다. 요절한 가수 하얀나비 김정호의 외할아버지이자 그 유명한 국악인 박동실도 담양 출신이다.

이처럼 전라도 판소리는 담양출신이거나 담양과 관련이 있는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김소희·한애순으로 이어지는 '심청가' 가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이날치가 태어난 터인 전남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에 '이날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사실, 담양 사람들도 국악에 관심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날치가 누구인지, 담양출신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이날치기념비' 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부끄럽지만 나도 '이날치' 라는 이름은 들어 봤고 담양출신인 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날치기념비' 가 수북면 대방리에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워낙 외진 곳이어서 일부러 발품을 팔아 찾아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명색이 '국창(國唱)'이라는 찬사가 이름 앞에 붙어 있지만,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어 가까이 다가가 그 내용을 읽기 전까지는 이날치기념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장 담양군에 제안을 해서 기념비가 있는 지역을 정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담양군이 앞장서서 담양출신 '이날치 홍보' 에 나서야겠다. 요즘 트롯 경연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성행하고 있다. 트롯이라면 촌스러운 것으로만 알고 있던 젊은 층에게 우리 전통문화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 전통문화는 국악과 판소리이다.

사실, 국악과 판소리를 전통 그대로 공연한다면 젊은 층들 중 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날치밴드' 가 소중하다. 조금 변형은 되었지만 젊은 층들이 우리 전통적인 국악과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해줬다. 전통적인 국악과 판소리는 전문 소리꾼들이 이어 가고 '이날치밴드' 처럼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국악과 판소리가 앞으로 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이 글은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 서부원 선생님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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