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을 숲(上)

괴산군 후평숲과 왕소나무숲, 홍성군 좌우촌 마을을 中心으로

마을숲은 한두 그루의  고목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몇 그루의 노거수가 이루는 작은 동산으로 이루어지거나 대규모의 숲으로 조성되기도 한다. 규모나 종류는 달라도 마을숲은 주민들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만들고 가꿔온 전통마을의 경관을 대표하는 녹지공간으로, 농촌다움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으며 마을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으로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우리 삶의 흔적이 반영되어 있는 문화적 경관의 산물이 바로 전통 마을숲인 것이다.


*괴산군 후평숲

괴산은 이름처럼 나무와 산의 고장이다. 

홰나무를 의미하는 괴(槐)는 느티나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괴산에는 당산나무로 대접받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많다. 

군(郡) 면적의 팔 할 가까이가 산으로 이뤄진 괴산에는 장연면 오가리의 800살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382호)가 대표적이며 송덕리 미선나무, 읍내리 은행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대접받는 귀한 나무들이 즐비하는 등 괴산은 자신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청천면사무소에서 후평도원로를 따라 2㎞가량 가면 후평리에 도달한다. 후평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청천의 뒤뜰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는데 이 청천의 뒤뜰 마을 앞엔 박대천이 흐르고 마을과 박대천 사이에 마을숲이 놓여있다. 

마을과 박대천은 숲을 사이에 두고 내외하되 척지지 않고 어우러져 소박하고 아름답다. 감춤과 드러냄의 절묘함과 물과 나무 그늘의 서늘함에 이끌려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후평숲을 찾는다. 

특히 천렵과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여름엔 그 인파가 절정에 달한다. 후평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인데 저마다 경쟁하듯 높이 솟아 있어 인상적이다. 빼어난 주변 경관과 더불어 인근에 국립공원 화양동 계곡, 공림사 등 연계되는 관광지들이 많아 후평숲은 야영장으로도 인기다.

이와 함께 신후평리 덕사리, 늘목마을 등에서는 마을제사가 전승하고 있으며 기미년 만세운동 기념소나무가 있다.

약 300여 년 전부터 풍수상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박대천의 한기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방풍림이라는 설이 있으며 과거 후평숲의 원소유자는 이판서라는 사람이었는데 마을에 숲을 기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후평숲은 위 숲과 아래 숲으로 나누어져 있데, 두 숲 모두 마을의 소유였으나 전기를 끌어오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숲의 약 2000평을 적십자사에게 팔았고 숲을 매각한 재원과 재일교포 김규식씨의 도움으로 원후평리가 청천면에서는 소재지를 제외하고서는 가장 먼저 전기를 사용한 근원이 됐다.

풍수상 하천으로 빠져나가는 지기(地氣)와 강바람을 막고자 조성된 후평숲은 300년의 역사를 헤아릴 정도로 유서가 깊다. 

일제강점기 배를 건조하기 위해 숲을 남벌(濫伐)했던 일본인들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피서객들로 인해 숲이 급속도로 훼손되고 비료목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아까시나무가 왕성하게 성장해 기존 나무들의 생육을 방해하면서 훼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보다 못한 주민들은 잡목을 솎아 내고 느티나무 등을 심는 등 마을숲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지난 2003년 마을 자체적으로 후평숲 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2억1600만원을 들여 외과수술, 수형조절, 고사목·경합목제거, 쇠약목 배양토처리, 안내간판 및 편익시설 설치, 수목식재(소나무, 느티나무 등), 시설물 공사(정자, 안내판, 평의자), 수목제거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자 '충북 생명의 숲' 등 시민단체가 복원 작업에 동참했다. 

이후 녹색자금관리단의 복권기금 1억6500만원을 투입해 지난 2007년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40일간 벌어진 복원공사를 통해 소나무 70본, 참나무 96주, 느티나무 3주 등이 새롭게 숲에 식재됐으며 은행나무, 벚나무도 헐거웠던 빈자리를 채워 숲의 일부를 이뤘다.

이같은 노력에 힘업어 후평숲은 숲의 가치를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원지 특성상 취사활동으로 인한 열기는 땅으로 스며들어 뿌리에 상처를 입히고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고기 기름은 잎에 달라붙어 광합성을 방해하고 있어 최소한 취사활동을 금지하는 것이 숲의 미래를 밝게 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 괴산 왕소나무숲

왕소나무숲은 괴산에 뿌리 박고 있지만 상주 땅을 거쳐야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충북 괴산군 삼송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가 나뉘

어 있어 왕소나무숲을 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왕소나무는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13.5m이고 가슴높이의 둘레는 4.91m이다. 이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 불리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용송(龍松)으로 불려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 받았다.

하지만 '왕소나무(王松)'는 지난 2012년 태풍 볼라벤의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 뿌리가 통째로 뽑히고 가지가 부러지면서 쓰러졌다.

괴산군은 쓰러진 왕소나무가 더이상 썩지 않도록 살균·살충제를 주입한 뒤 껍질을 모두 벗겨 방부처리를 하고 뿌리에서 뻗어 나온 굵은 줄기는 30~100cm 가량 일으켜 세우고 철제지주를 설치해 지탱하도록 했다. 여기에다 비에 젖지 않도록 지붕을 만들어 용송을 보호하고 있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하였는데 6·25 전란 때 두 그루가 불타 지금은 마을 언저리에 왕소나무 한 그루만 남아 천연기념물(제290호)로 보호받고 있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한다. 

왕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또한 가치가 있는 전통마을숲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2018년 2189㎡ 규모로 전통마을 숲을 복원해 소나무 전지 작업을 비롯 방문객들의 잦은 방문에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목재 데크를 설치했지만 올 여름 폭염과 가을 장마로 힘을 얻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홍성군 좌우촌 마을숲

홍성을 대표하는 석당산을 덮은 소나무 숲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석당산(146m)은 동쪽으로는 결성면 읍내리 좌우촌, 서쪽으로는 성남리 내남 일부와 성곡리 가곡 일부, 북쪽으로는 읍내리 교촌과 성호리 가곡, 남쪽으로는 성남리 내남·중리·신리를 각각 이루고 있다. 

산의 정상에 신당(神堂)을 짓고 해창(海倉)에서 세미곡(稅米穀)을 싣고 떠나는 배들의 무사귀환을 빌던 곳으로 석당(石堂)이 있는 산이라 해서 석당산이라 불리어 왔다. 

좌우촌마을 숲은 석당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데 주민들의 휴식과 여가활용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는 역사문화와 자연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03년 고사목 제거 및 생육 환경 개선, 전통시설 복원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좌우촌마을청년회에서 2013년부터 자체적으로 정비 사업을 벌이고 주변에 야생화(산철쭉, 말발도리, 구절초, 상사화) 등을 심어 오고 있다.

임도 주변 곳곳엔 운동기구와 벤치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석당산은 빈틈없어 멀어 보이는 명산과 달리 생활을 밀쳐내지 않는 자리에서 가깝고 친밀한 공간이다. 

좌우촌 마을 소나무 숲 또한 구태여 먼 곳의 사람들을 부르려 애쓰는 숲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만으로 자족하는 아기자기한 숲이다. 

이같은 숲을 가까이 두고 사는 좌우촌 마을 사람들의 삶은 행복 그 자체이다.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해 온 오래된 숲임에도 불구하고 좌우촌 소나무 숲엔 의외로 노송(老松)이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밑동 위 오래된 생채기를 기점으로 뒤틀려 자라는 나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해상봉쇄 작전으로 인해 휘발유와 항공유 등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이 대체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고 노송 뿌리까지 캐내 기름을 짜내는 등 일제의 수탈 흔적은 상흔으로 깊고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일제는 쓸만한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톱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만들어 송진이 쉽게 흘러 내릴수 있도록 깊은 생채기를 내어 송진을 1차 끓여서 가공한 후 드럼통에 담아 군수물자로 사용했다.

이처럼 아픈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매년 봄이면 하얗게 수놓은 벚꽃과 각양각색의 꽃들로 장관을 이뤄 등산 애호가들로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를 위해 초입 부분에 소규모 체육시설 및 휴식공간을 만들어 매년 정비해오고 있으며 구절초와 야생화를 식재해 주민들은 물론 등산객들에게 어머니 품과 같은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등 좌우촌마을숲은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장명국 정종대 記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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