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 연합 의병 거병지

1872년에 제작된 담양부 지도(왼쪽)와 1898년에 제작된 담양부지도. 양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1872년 지도에 표시된 동헌(東軒)과 1898년 지도의 추성관(秋城館)이 같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1872년에 제작된 담양부 지도(왼쪽)와 1898년에 제작된 담양부지도. 양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1872년 지도에 표시된 동헌(東軒)과 1898년 지도의 추성관(秋城館)이 같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1592년 5월 임진왜란을 맞아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의병 담양회맹군의 거병지이자 국가 위기 시 민중과 함께 나라를 구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추성관이 당시 담양부사가 집무했던 동헌 건물로 밝혀졌다.

추성관은 일부 향토사학자의 주장에 따라 담양동초교 체육관 자리로 알려져 왔으나 추성관이 당시 동헌 건물이었음을 입증하는 지도가 발견됨에 따라 추성관의 위치와 역사적 사실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지도는 지난 1988년 9월 담양군과 담양군향토문화사회가 공동으로 편찬한 ‘향사의 맥(鄕史의 脈)’이란 도서에 수록된 고지도(사진, 1898년 - 고종 35년 제작 추정)로 추성관(秋城館)이라는 명칭의 건물이 등재되어 있다.

이 지도를 근거로 이전에 제작된 담양읍지도(1872년 담양부지도)를 비교하면 추성관으로 표기된 건물이 동헌이었음을 알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유추하면 추성관은 당시 동헌의 별칭으로 사용된 이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동헌의 위치 또한 현재 담양읍사무소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전국 최초 거도적인 연합의병의 맹주인 제봉 고경명 선생과 종사관 부장 월파 유팽로, 청계 양대박, 안 영 외 무명의 6000의병의 기상과 얼이 스며있는 추성관은 한때 모 향토사학자가 현 담양동초등학교 체육관 자리에 있던 추성관이 해체되어 월산면 화방리로 옮겨졌다는 주장에 따라 월산면 화방리에 있던 건물을 담양군에서 매입, 추성관을 복원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그 건물은 규모나 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추성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의견과 함께 추성관 주변에 있었던 ‘추성각’일 것이라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담양군은 당초 현 담양동초등학교 체육관 인근에 고경명 장군 창의기념비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위치나 규모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해지자 월산면 화방리에 있던 추성각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매입한 뒤 2013년 5월 담양읍 운교리 100번지 죽향문화체험관 일원 9956㎡ 부지에 전시관, 강당 등 총 9동의 한옥 건물을 건립하고 추성창의기념관으로 명명했다. 

담양군은 “추성창의기념관은 전국 최초 거도적인 연합의병의 맹주인 제봉 고경명 선생과 종사관 부장 월파 유팽로, 청계 양대박, 안 영 외에 무명의 6000의병의 얼을 되살릴 수 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다양한 담양의 문화자원과 연계한 의향정신을 기리고자 건립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군은 “기존 현창 사업의 건축물 위주의 정적인 공간보다는 동적인 생활공간으로 활용코자 숙박시설로의 활용도를 제고하는 한편 전국 최초 연합 의병 창의지였던 추성관의 역사성을 부각코자 추성관 복원을 시도한 것이 색다른 시도”라고 덧붙였다.

이에대해 일부 주민들은 “추성창의기념관은 임진왜란 시 제병 고경명 선생 등이 담양에서 전국 최초로 항일 의병을 창의한 의향 담양의 정신적 유산은 물론 후손들에게 숭고한 의병정신을 고취하는데 큰 의미가 있는 곳인 만큼 추성관의 원래 위치가 어디였다는 정도의 안내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제봉 고경명 선생은 1533년 광주 압촌에서 출생하여 홍문관 교리, 서산군수, 춘추관 편수관 등 관직을 두루 거친 후 동래부사를 마지막으로 고향에 내려왔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추성관에서 호남 최초로 의병을 모집해 임란 의병항쟁을 촉진시켰고, 금산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한명석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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