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설문조사에서 시작된 역발상 지역축제의 새 모델 되다
의전도 개막식도 바가지도 없는 ‘김천김밥축제’

경북 김천시 김밥축제는 한때 농담처럼 불리던 ‘김천=김밥천국’이라는 유머를 도시 브랜드로 재해석한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했다. 

지역축제가 반드시 거대한 예산이나 유명한 무대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창의적인 기획만으로도 전국적인 관심을 끌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 ‘김밥천국’에서 ‘김밥도시’로

김천김밥축제는 지난해 첫 선을 보인 뒤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올해 열린 제2회 축제 한층 완성된 운영체계와 확장된 콘텐츠로 약 15만명이 방문했다.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김천 직지문화공원 및 사명대사공원 일원에서 열린 축제는 단순한 먹거리 행사를 넘어 ‘김밥’이 가진 소풍·여유·가족의 이미지를 축제 전체의 콘셉트로 확장했다.

올해 축제의 핵심은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나누며 쉬어가는 풍경’이었다. 축제장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앉아 식사하고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피크닉존, 버스킹무대, 포토존이 마련됐다. 

■ 김밥도시의 시작 

축제를 기획한 박보혜 김천시 관광진흥과 관광마케팅팀 주무관에 따르면 ‘김밥축제’ 구상은 과거에도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박 주무관은 2023년 “김천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느냐”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김밥천국’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천을 모르면 어떤 축제를 해도 관심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 주무관은 ‘김천이 김밥천국으로 불린다면 진짜 김밥의 도시가 되자’는 역발상을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를 이봉근 관광마케팅팀장이 “대중이 원하는 걸 우리가 하면 된다”며 적극 수용하면서 그동안 논의에만 그쳤던 ‘김밥축제’가 실제 추진됐다. 결국 오랫동안 아이디어로만 남았던 ‘김밥축제’는 실무자의 창의력과 관리자의 결단이 만나 현실이 된 셈이다.

■ ‘세 가지가 없는 축제’

김천김밥축제는 인구 약 13만명의 도시에서 열렸음에도 이틀간 약 15만 명이 방문하며 도시 인구를 넘어서는 열기를 보였다. 

이 축제에는 세 가지가 없다. 

의전이 없었고 개막식이 없었으며 바가지도 없었다. 축제는 3無(의전·개막식·바가지)와 퀄리티 높은 김밥, 김밥공장,‘오직 김밥’에 초점을 맞춘 행사 구성과 획기적인 홍보 영상 등 다방면에서 우수 축제로 호평을 받았다. 

축제 시작 전 내빈 소개, 축사, 환영사 등을 없애고 공연으로 대체했다. 축제의 주인공은 행사장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개막식이 사라지면서 흔히 볼 수 있던 지역 정치인의 의전도 사라졌다. 

실제로 한 방문객은 “형식 없는 덕분에 편했다”는 좋은 반응을 보였고 “기다림은 길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는 방문객의 말도 나왔다. 
  

■ '김밥'과 '자두'가 만난 이야기 

올해 개막무대에도 ‘김밥’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가수 자두가 지난해에 이어 메인 개막식 공연을 맡았다. 

그녀의 이름과 김천의 대표 특산물 ‘자두’가 겹치면서 ‘김밥’과 ‘자두’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스토리로 엮였다. 

김천 시민들에게 자두는 여름이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지역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비록 설문조사에서 김밥천국에 자리를 내줘 김밥축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지역의 상징과 대중가요 속 인물을 하나로 엮어 전국 최대 자두 생산지인 김천의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김밥’과 ‘자두’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스토리로 엮이면서 김천김밥축제는 단순한 먹거리 행사를 넘어 도시를 알리는 문화 콘텐츠로 확장됐다. 

또한 올해 김천김밥축제는 ‘오직 김밥’이라는 콘텐츠로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지난해 8개 업체였던 김밥 판매 업체를 32개 업체로 확대하고 유명 가수 대신 김밥 노래를 부른 가수 ‘자두’를 비롯해 김밥의 주재료인 달걀을 상징하는 ‘스탠딩에그’, 삼각김밥 머리의 대명사 ‘노라조’, 김밥 앨범을 낸 ‘죠지’등 라인업으로 구성하여 ‘진짜 김밥천국’을 완성했다.

■ 1회보다 진화한 2회 

지난해 첫 축제가 기획의 참신함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예상치 못한 방문객 폭증으로 운영 미숙이 드러났다. 김천시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축제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했다. 

김천김밥축제의 예산은 2024년 1억5000만 원에서 올해 5억원까지 증가했다.

김천시는 김밥 판매 부스를 8개에서 32개로 △김밥 참여업체 4배 이상 확대 △시간당 1,500줄을 생산하는 김밥 공장 가동 △부스별 키오스크 설치 △ 김밥 잔여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전광판 설치 △행사장 규모 5배 확대 △셔틀버스 5배 증차 등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시행했다. 

그 결과 2회째 축제임에도 엄청난 레벨업으로 큰 성과를 냈다는 데 모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결제 시스템도 전자화돼 키오스크를 통해 대기 시간을 줄였다. 나아가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존 2노선에서 10노선 이상으로 늘리고 차량 진입을 통제한 대신 외곽 주차장과 행사장을 연결하는 순환 셔틀을 운영했다. 

올해 축제 방문객은 첫날 8만명 이틀 합산 약 15만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2024년 10만명보다 1.5배 증가한 수치다. 주요 방문객은 MZ세대와 가족 단위 관광객,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았고 K-푸드 열풍과 틱톡 ‘김밥 챌린지’의 확산으로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은 상태였다. 

색다른 볼거리도 화제가 되었다. 지역업체 ㈜대정 김밥공장이 축제장 입구에 서부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김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김천김밥축제만의 특별한 볼거리’가 만들어졌다. 

방문객들은 ‘2번째 방문인데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자치단체가 주최한 축제에서 이런 퀄리티라니 놀랍다’,‘행사장 곳곳 세심하게 준비한 게 보여 박수를 보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로컬김밥과 전국 팔도 이색김밥의 다양성과 품질, 합리적인 가격이 조화를 이뤄 완벽한 3박자가 어우러진 ‘바가지 없는 착한 축제’, 서울, 경기, 제주 등 먼 지역에서도 방문할 만큼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지역 축제’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축제 직전 발생한 상수도 유충 문제에 대응해 김천시는 긴급 예비비를 투입 생수 10만 병과 2리터 생수 3천 병을 확보해 조리와 음용용으로 사용했다. 이 조치는 위생 문제를 선제적으로 차단한 모범 사례로 평가됐다.

또한 CU와 협업해 ‘김밥쿡킹 경연대회’를 열고 우승작인 ‘호두마요 제육김밥’을 편의점 한정 상품으로 출시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협업은 지역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 기획력을 따라가지 못한 운영 능력, 전문성 강화가 문제 

그러나 숙제도 남았다. 김밥부스의 조기 품절, 축제장을 가득 채운 대기줄, 축제장까지 교통정체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김천시는 올해 축제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혼잡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년에는 교통·대기 관리 시스템 고도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축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아쉬움도 있었다. 행사장을 채운 인파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았고 그만큼 질서와 안내가 필요했다. 인기 부스의 대기열은 길어졌고 셔틀버스 정류장에서는 줄이 어디서 시작되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안내 표지판이 부족했고 전광판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반영하지 못했다. 김밥 판매 부스 간 간격이 좁아 관람객이 부딪히는 일이 잦았고 구매와 결제 동선이 뒤엉켜 혼잡이 가중됐다.

더불어 현장을 조율하는 인력은 부족했고 자원봉사자들은 제자리를 지켰지만 전체를 통제할 구조가 부재했다. 관람객이 스스로 줄을 세우고 이동 동선을 찾아야 하는 장면은 단순한 혼잡이 아니라 이를 관리할 체계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김천의 기획력은 탁월했지만 이를 받쳐줄 운영의 전문성이 여전히 부족했다는 점이 한계로 드러났다.

이에 현장 통제와 질서 관리, 교통 안내, 대기 동선 설계 등 기본적인 운영 시스템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기획의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영의 전문화를 제도화하고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 데이터 기반의 교통 관리와 대기 동선 예측 시스템, 민관 협업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 지역축제의 새로운 모델 

김천김밥축제의 가장 큰 성과는 단순한 먹거리 축제의 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김천시는 첫해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분석해 개선했고 그 결과 완성도를 높였다. 

김천은 ‘김밥으로 도시를 마케팅한 도시’를 넘어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도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화려한 무대보다 치밀한 기획과 참여, 투명한 행정이 김천김밥축제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 축제는 작은 지역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공동취재단 담양곡성타임스 김고은 기자, 남해시대 전병권 기자, 한산신문 박초여름기자, 해남신문 노영수 기자, 홍주신문 한기원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