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의 국사가 그릇된 지는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의 마음 또한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대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래됩니다. 소관들은 아래서 히히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들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모으는데 혈안입니다.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고 보면 대비는 궁궐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외로운 고아일 뿐입니다. 저 많은 天災,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은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읽어도 머리끝이 쭈뼛 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단성소(丹城疏)입니다.

이정섭 담양군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6월, 담양 관내 50여개 사회단체장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됐습니다. ‘우리고향 담양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는 제하의 성명서에서 사회단체장들은 “담양의 명예를 더럽히고 실추시키며 군민의 복리에 반하는 행태들이 난무하고 있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는 심경을 토로하고 “검찰의 조속한 수사결과 발표”를 촉구했습니다.

또 “이군수가 명백한 범죄행위를 했다면 깨끗한 정치와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피력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3일 광주지방법원은 이정섭 담양군수에게 형법상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 징역 1년에 추징금 55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지난 4월 중순 시작된 이 군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종결되고 수사결과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지요.

기자는 이제 담양지역 사회단체장들의 입에 주목합니다. 지난 6월 성명서를 발표할 당시 “검찰수사로 인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각종 현안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담양군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사실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군수의 비리가 밝혀졌고 이에대해 사법부가 합당한 판단을 내렸으니 이제 성명서에서 주장한 말들을 실천에 옮길 시기가 됐다고 봅니다.

기자가 화두를 남명 선생의 ‘단성소(丹城疏)’로 시작한 연유는 작금의 지역상황이 당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민선4기 들어 군정이 그릇된 지는 이미 오래고, 조직의 기강은 벌써 무너졌으며 하늘의 뜻도 군민의 마음도 이미 멀어졌음에도 이 군수가 ‘못 먹는 감 찔러버린다’는 속담처럼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항차 이 지역은 남명 선생의 상소문처럼 ‘벌레한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의 나무’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지역의 사회단체장들이 입을 열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군수의 무모한 버티기야말로 지난 6월 성명서에서 주장했듯이 ‘담양군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심각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군수의 이러한 작태야말로 ‘담양의 명예를 더럽히고 실추시키며 군민의 복리에 반하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의회도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명색이 군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인 의회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군민들에게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미꾸라지 한 마리를 풀어놓은 채 온 웅덩이가 흐려지도록 방관만 하고 있었던 무관심에 대한 반성도 함께 따라야겠지요. 이제부터라도 의회와 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주민소환이라도 시작하심이 어떠신지요? 당연히 공무원노조도 동참하리라 믿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의복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 자신이나 주변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법, 이 군수 또한 그간의 행위에 대한 깊은 뉘우침으로 스스로 군수 직을 사퇴하고 자중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군민들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전제군주 시절, 임금을 고아라 하고 대비를 한낱 과부라 칭한 남명의 극언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했던, 그래서 하늘과 같은 임금의 존재조차 개의치 않고 당당히 자기주장을 펼쳤던 진짜배기 선비의 기개에서 비롯됨이 아닐까요? 그 선비의 우람하고 당찬 기개를 오늘날 담양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습니다. /한명석(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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