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민단체 하나 기리는 곳 없어
쌀시장 개방 등 피폐해 가는 농촌의 현실을 온몸으로 절규한 청년농민이 있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3년.
하지만 담양군의 어느 농민단체 하나 그를 기리는 단체는 없었으며 심지어 그의 고향인 남면에서조차 그는 잊혀진 존재였다.
마을이장과 학생회장 등 1인4역을 해냈던 정용품 씨는 지난 2005년 11월 11일 ‘농민의 날’에 농촌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장에서 한농연전남연합회장은 “동지의 육신은 흙으로 돌려보냈지만 뜻과 함성은 우리 가슴에 메아리 치고 있다. 개방농정의 냉혹한 현실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고 고인의 무거운 짐을 남은 사람이 나누어 지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쌀 직불금 파동’등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정용품 씨처럼 목숨 바친 이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담양군 남면사무소 관계자는 “마을 이장에게 확인한 결과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주는 것 같다”며 “고인의 높은 뜻이 벌써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영준 記者
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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