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북파공작원 하면 연상되는 것이 군복이 없이 장발에 휴가시에도 권총을 차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또한 천만관객이 동원되었던 실미도와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스통을 짊어지고 항의시위를 벌였던 일들을 기억해낸다.
그런데 항상웃는 얼굴에 이웃집 아저씨같이 친근한 신포우리만두 최태호 사장이 무시무시한 북파공작원 특수임무수행자였다면 이를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청년시절에는 조국을 위해 명령에 죽고 살았지만 지금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지역에서 꼭 필요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특수임무수행 국가유공자회(북파공작원 이하 특임자) 전남 동부권지회장 최태호(51, 곡성읍 신포우리만두)씨는 항상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준다.
최 씨는 동네에서 친절한 아저씨로도 소문 났지만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도 체질화 되어 있다.
곡성경찰서 의경들은 “신포만두아저씨는 우리가 야간근무를 하면서 배가 출출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와 만두와 김밥을 가져다주고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면서 "아저씨가 군대생활을 너무 힘들게해서 우리들을 보면 친동생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북파공작원인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놀라워 했다.
또한 최근에는 곡성경찰서 민원동옆 주민들의 휴식처인 돌다방에 100원짜리 동전한다발(10만원)을 기부하여 주민들이 언제든지 차를 마실수 있도록 하는 등 선행을 베풀고 있다.
최 씨가 걸어온 민생역정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제대후 서울에서 직장생횔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사직했다.
사선을 넘나드는 특수한 환경의 군대생활 탓에 삭막하고 답답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염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사회에서 근무하는것도 좋았지만 부모형제들과 맑은공기, 깨끗한 물이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곡성으로 불러내렸다.
고향에 돌아온지 어느덧 13년이라는세월이 훌쩍 지났다. 특유의 근면함이 몸에 베어있던 그는 그동안 친절과 성실한 자세로 신포우리만두집을 경영, 이제는 주위로부터 성공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겼다.
처음 주위 선후배들은 최 씨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했다고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곡성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인상에 그 성격으로 음식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달이나 갈까 생각을 했지만 근면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 친구를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씨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김영배(곡성읍 건설장비업)씨는 저녁 늦게까지 만두를 배달하는 최 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꼭 성공할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최 씨 역시 “제가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모든 자존심과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성실한 자세로 손님들을 친절히 모셔야겠다는 일념으로 13년을 살다보니 이제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그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형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가족들에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초창기 최 씨는 특수임무수행자회 호남지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땀을 흘렸다. 국가에 충성한 댓가가 소외와 무시라는 결과로 돌아오자 특임자단체에서는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한 끈질긴 투쟁의 결실로 이제는 법률 8566호에 의거, 명실공히 국가보훈처 산하 애국보훈단체로 당당히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됐다.
2006년 8월 특임자 보상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된 후, 명예도 회복하고 보상도 받게 됐다. 특히 2008년 1월 28일부터 특수임무수행 국가유공자회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특임자 본인 및 자녀들에 대한 혜택이 구체화 되어 늦게나마 자신들을 인정해 준 국가에 감사하고 있다.
“아직도 특수임무수행 후유증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동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의 경제적안정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할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현재 특수임무수행 국가유공자회 전남동부권지회장으로서 지역사회봉사와 특임자국가유공자회원간의 돈독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신포만두 최씨 아저씨는 아직도 그늘진 곳에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 회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고 싶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성재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