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一鍼), 이뜸(二灸), 삼약(三藥)을 아시나요?

한국전쟁 와중에 1년 반 동안 노무사단 의무대에서 일할 때도 그랬지만, 전쟁이 끝나고 서울에 자리를 잡았을 때도 나는 인기가 좋았다. 침놓는 의원이 흔치 않아서이기도 했던 데다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돌봐주니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가끔은 빈정거리며 시비를 거는 이가 있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쟁 뒤 어수선하던 무렵에 나는 주로 왕진을 다녔다. 한 곳에 가면 대개 그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자리에 하루 종일 있게 되곤 했다. 특히 고려대학교 앞 개천가의 제기동은 갈 때마다 사람들이 사오십 명씩 모이곤 했는데, 어느 날은 한 중년 남자가 무리 속에서나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키우며 야물거렸다.

“침 가지고 병이 났는지 봤어야 믿지!” 난데없는 큰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한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침놓는 의원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기는 왔지만 미덥지도 않고 그냥 가자니 아쉽고 해서 망설이다가 괜히 부아가 나서 하는 말인 듯싶었다. 사내는 당장 시비라도 걸 태세였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나는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았다.

“여보슈, 침놓는 양반! 침 몇 개 꽂는다고 병이 다 나으면 세상에 아픈 사람 없겠네!” 완전히 시비조였다. 그러나 악의에 찬 말투는 아니었고 자신의 병이 침으로 나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사내의 심증을 충분히 헤아렸으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이렇게 물었다.

“침으로 당신 팔을 못 쓰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침을 믿겠어요?” 잠시 망설이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재주가 있다면 어디 한 번 해보슈.” “정말이지요? 다시는 팔을 못 쓰게 될 텐데 그래도 내 탓 안 할 자신 있지요?” “두 말 하면 잔소리지. 하지만 당신 말대로 안 되면 엉터리 침쟁이 노릇한 것, 열 배로 갚아줄 테니 그리 아시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영영 당신은 팔을 쓰지 못 하게 될 것인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겁을 줘도 물러서지 않으니 나도 도리가 없었다. 졸지에 구경거리를 만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끼며 나는 침통에서 천천히 침을 골랐다. 손에 잡은 침을 보여 주며 사내에게 “정말 내 탓 안 할 거지요?” 하고 다시 다짐을 받았다. 사내의 눈에 긴장하는 빛이 스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가 그의 왼팔을 잡아끌고 팔꿈치 바깥쪽에 손을 대자,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손을 쳐다보더니 다시 사람들을 돌아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나는 팔꿈치 바깥쪽의 곡지(曲池) 혈에 침을 꽂고 살살 비볐다. 곡지에 침을 놓고 살살 비비면 뻐근하게 아파 온다. 나는 침을 살살 비비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이고, 아이고!” 잠시 참아보려고 애를 쓰던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최면술을 걸듯이 말했다. “쯧쯧, 이제 영영 팔 못 쓰게 되었네.”

그 사내의 비명 “아이고, 선상님” 아픈 왼팔을 감싸 쥐고 쩔쩔매던 사내는 정말 팔을 펴지 못했다. 구경꾼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 했고 사내는 새파랗게 질리며 당황해 했다. 곡지에 침을 아프게 놓으면 뻐근해져 잠시 동안 팔을 펴지 못 하는데 사내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침 무서운 줄 알았지요? 침을 함부로 여기면 큰일 나는 겁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사람들에게 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침이라고 하면 발 삔 데나 맞는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니면 무슨 신령님이 부리는 도술처럼 기묘하고 신비하다고 믿지요.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침을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침은 누구나 놓을 수 있지만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의술이에요. 그래서 침술이라고 부르잖아요.”

나는 들고 있던 침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침(鍼)은 약(藥)과는 다릅니다. 침은 술(術)이지만 약은 술이 아니에요. 침술이라고는 해도 약술이라고는 하지 않죠? 침은 약보다 먼접니다. 일침 이뜸 삼약(一鍼 二灸 三藥)이란 말 들어보셨을 테니 잘 아실 겁니다.” /김남수(뜸사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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