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사(腹上死)는 왜 발생하는가?(中)

나는 환자 옆으로 다가가 팔다리를 만져보았다. 짐작대로 팔다리가 힘없이 늘어지고 싸늘했다. 그렇다! 그가 쓰러지게 된 것은 아침에 발생한 어떤 사건 때문임이 분명했다. 나는 부인에게 다시 물었다.

“환자가 쓰러지기 전, 아침에 별일 없었습니까?” 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저었다. 그녀는 내가 묻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환자의 맥을 짚으면서 따라들어 온 사람들은 내보내고 부인만 남게 했다.

지인들이 모두 방을 나가자 나는 다시 맥을 짚었다. 환자의 기구맥(氣口脈)이 느리고 약했다. 신장 계통의 반응이 나타나는 왼쪽 척(尺) 부위의 맥이 작고 잠겨 있었다. 망진하여 짚어낸 그대로였다. 신(腎)의 음혈(陰血)이 마르고 정기(精氣)도 소진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부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침에 방사(房事)가 지나치셨군요?”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부인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곧바로 나는 환자의 다리가 보일 만큼 이불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환자의 다리 앞쪽 넓은 정강이뼈를 노크하듯 손으로 두드렸다. 석회 동굴의 속이 약간 빈 돌 고드름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들으셨죠. 방사가 지나쳐 정액이 바닥났을 때 정강이뼈를 두드리면 이렇게 뼈 속이 빈 소리가 납니다. 이 정강이뼈 곳에 음정(陰精)이 고이거든요.”

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방사 때문에 쓰러지게 됐다는 말씀이세요?”

“네. 요사이 환자가 성을 잘 내고 성욕을 강하게 드러냈을 거예요. 그렇죠?” 부인은 고개만 끄덕였다.

“흔히 사람들이 음허화동(陰虛火動) 증상을 잘 몰라서 이렇게 변을 당하지요. 음허화동이 되면 가슴 속이 달아오르면서 답답해 팔다리를 가만 두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지요. 또 볼이 붉어지거나 입이 마르고, 목이 마르고 화를 잘 내어 성욕이 더욱 강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음정이 부족해져서 허화(虛火), 다시 말해 헛불이 왕성해지는 것인데 그래서 음허화왕(陰虛火旺)이라고도 합니다. 헛불인 줄 모르고 욕심내다가 큰일이 나는 것이지요. 노인이 느닷없이 성욕을 강하게 보이면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고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복상사(腹上死)라는 말도 들어보셨죠? 남자가 방사하다 갑자기 배 위에서 죽는다는 것도 음이 심하게 허하여 헛불이 일어났는데 그걸 모르고 욕심을 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내 설명을 듣던 부인은 고개를 떨구고 울먹였다. 울먹이면서 아침나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K씨가 관계를 자꾸 요구했지만 자기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한참 있다 나온 그가 “하는 수 없이 혼자 해결했어” 하고는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내더라는 것이었다. 그 때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웃어넘겼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아프다고 했다. 부인은 그 때 요구를 들어줄 걸 그랬다면서 안쓰러워했다.

나는 부인이 받아주었다면 환자는 복상사를 만났을 수도 있으니 더 큰일은 피한 셈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부인은 눈물이 어린 눈으로 내게 애절하게 부탁했다.


환자의 딸꾹질을 멈추게 하려면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의사와 한의사가 여럿 왔다갔지만 선생님처럼 병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을 살려주실 분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이 사람 곁에서 떠나지 마시고 꼭 살려주세요.”

나는 일단 환자의 딸꾹질부터 멎게 하자고 했다. 가슴과 배 사이의 가로막에서 일어난 경련을 없애 주기만 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큰 짐을 더는 셈이다.

딸꾹질은 들숨을 방해하여 폐를 앓을 때처럼 가늘고 높은 소리가 나게 한다. 그러므로 소리를 조정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게 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장부는 폐이니 그 경락인 폐경[手太陰肺經]을 써야 한다. 나는 엄지손가락 손톱뿌리 옆의 소상(少商) 혈에 침을 놓고, 경련을 하는 가로막 근처의 거궐(巨闕) 혈과 등에 있는 지양(至陽) 혈을 잡아 침을 놓고 뜸을 떴다.

침을 놓고 난 뒤 나는 환자의 숨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딸꾹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부인도 말없이 환자를 지켜보았다. 방안에는 환자의 딸꾹질 소리만 맴돌았다. 시간이 무겁게 흘러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조금씩 딸꾹질 횟수가 줄어들고 소리도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김남수(뜸사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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