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눈길을 끄는 책을 찾게 됐다.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통섭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잘 몰라 약간의 궁금증이 발동해서다.
며칠 후 책이 도착하여 역자인 최재천 교수의 서문을 보고나서야 나는 통섭의 의미가 “큰 줄기를 잡다”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낯선 단어인 통섭을 선택한 역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여기서 나는 왜 우리 사회에 잘 사용되지도 않는 통합과 통섭이란 단어를 가지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필자 나름대로 생각한 이유는 이렇다. 우리 사회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무너져 내렸으며 이런 까닭에 우리 사회는 인문학보다는 현실적인 사회과학적 요소가 비교우위에 서게 되면서 이타적 삶보다는 이기적 삶으로 변했고 이러한 삶이 원인이 되어 우리들의 의식은 이해와 배려보다는 불행하게도 아집과 독선으로 변하면서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삶은 더 각박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상호간 배려가 없는 사회가 되다보니 갈등으로 인한 에너지의 비효율이 우리생활 주변 곳곳에 널려 있다.
우선 기존의 남북한의 분할된 상황과 뿌리 깊은 영호남의 갈등이 그렇고 또 앞으로 머지않아 있을 갖가지 선거에서 나타날 동지 아니면 적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이뿐인가! 우리를 더욱 한심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표상인 정당정치에서조차도 우리 당이 아니면 무조건 쳐야한다는 소위 당동벌이식 무차별적 공격은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철저하게 양분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머지않아 국민의 5%를 점할 다문화가정의 이질적 요소는 또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점입가경이다.
결국 이러한 편협하고 이지적인 사고가 우리사회에 만연되면서 끝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까지 연결되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여기서 나는 어떤 이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심장이 강해야 한다는 말이 농담을 넘어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와 다름은 무조건 틀린 것이며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이시대의 배타적 사고에서 사회 통합을 위하여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통섭의 현장일 것이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 이해하고 포용하며, 우리 서로 다름을 융합하여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사회적 대 통합의 길일 것이다.
물론 일순간에 기존의 가치와 사고의 변화를 바라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난 우리 민족의 슬기와 열정을 믿으며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의 조류가 만났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소위 불확정성의 원리까지도 함께 믿는다.
끝으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 모두가 배타적 사고를 접고 함께 진실로 하나되어 사회적 대통합의 큰 줄기를 잡아 갈 때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싶다. /김신환(곡성경찰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