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섬진강기차마을이 지난해 12월 코레일투어서비스와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하고 제2의 도약을 위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섬진강기차마을은 지난 2005년 3월 섬진강변 폐철도에 관광용 증기기관차를 운영하면서 주변 관광지를 연계해 연간 48만명의 관광객을 유치, 매년 9억여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곡성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코레일투어서비스는 위탁운영계약 체결을 계기로 기존에 운영 중인 정선 레일바이크 사업과 강릉~동해~삼척을 잇는 바다열차 사업 등 관광사업 운영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섬진강기차마을과 심청이야기마을을 포함한 곡성군 일대를 대한민국 최고의 기차 테마파크로 개발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때맞춰 전라남도도 올해 섬진강기차마을 조성사업에 12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키로 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혀 섬진강기차마을의 변신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본지는 외국의 사례를 통해 향후 섬진강기차마을이 지향해야 할 발전방향을 조명 해보고자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게재된 기획기사는 강원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취재, 보도한 기획기사이며 강원도민일보의 협조를 얻어 기사를 전재한다. /편집자


① 평범한 농촌마을에서 관광기차 메카로 ‘우뚝’
폐철도 활용 곡성 섬진강기차마을

# 지역발전 보증수표 폐철도


섬진강기차마을 전경

곡성군 섬진강 기차마을은 녹슨 철길을 관광자원화 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1998년 전라선 개량화 공사로 곡성역에서 압록역을 잇는 13.2㎞ 구간이 폐지되자 곡성군이 2002년 부지를 매입해 관광용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등을 운영하면서 대표적인 기차 관광지로 성장했다.

농업위주의 취약한 산업구조로 낙후성을 면치 못했던 곡성군에 새로운 발전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곡성군에 따르면 한 해 방문객수는 △2006년 35만6000명 △2007년 35만1000명 △2008년 35만5000명으로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35만여명이 찾고 있다. 지난해에는 개장이후 가장 높은 9억48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개발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막대한 예산 투입과 철도에 대한 지식부족 등으로 주민들조차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곡성군은 수십여 차례에 걸쳐 공청회와 설명회를 실시해 2년여 만에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다. 620억원이라는 재원 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곡성군은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문화관광부에 ‘1936년 개통된 폐선로의 역사적 보존가치와 기차 테마관광의 차별성’을 수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설명한 끝에 마침내 1999년 신규관광개발사업계획에 반영돼 국비를 지원받게 됐다. 사업추진을 가로막는 각종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만 무려 3년여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곡성군은 이후 옛 곡성역 주변 부지와 철도시설을 차례로 매입, 이 일대를 서서히 관광지의 모습으로 바꿔나갔다. 현재 섬진강 기차마을은 △312인승 관광용 증기기관차(좌석 162명·입석 150명) △레일바이크 140대 △20인승 미니기차 1대 △기차카페 2량 등으로 구성돼 있다.


# 또 다른 성공위해 끊임없는 변화

▲레일바이크


섬진강 기차마을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변화 없이는 날로 늘어만 가는 기차테마 관광지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부터 기차마을 내 침곡역과 가정역 사이 신규 코스인 5.1㎞ 구간 철로 위를 달리는 신형 레일바이크 100대가 운행에 들어갔다.

신형 레일바이크는 2인용과 4인용으로 구성됐으며 종전 4인용은 두 사람이 페달을 밟아 움직였지만, 신형 4인용은 탑승객 전원이 페달을 밟을 수 있어 재미와 속도감을 동시에 살렸다.

새 코스 개발은 인기가 높은 기존 레일바이크 관광 구간이 1.6㎞로 너무 짧다는 관광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게 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장미원도 조성된다. 곡성군은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오곡면 오지리 섬진강기차마을 관광지에 전국에서 가장 큰 장미원을 조성키로 하고 공사를 벌이고 있다. 사업비 65억1000만원을 들여 오는 10월 완공 예정인 장미원은 2만㎡ 크기로 국산품종을 비롯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적인 장미전문육종회사의 신품종 1004종을 엄선해서 심을 계획이다.

운영방식에서도 변화를 줬다. 곡성군은 2005년 첫 개장 이후 3년여에 걸친 직영과정에서 △비능률과 운영시스템의 한계 △시설물에 대한 다양한 행정수요 급증 △관광 연계프로그램 개발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함에 따라 지난해 10월 코레일투어서비스와 민간위탁 운영 협약을 맺었다. 현재 섬진강 기차마을은 곡성군이 관리하고, 코레일투어서비스가 운영하는 체제로, 수익금을 일정 비율로 나누고 있다.

② 폐철도가 일으킨 호주 멜버른의 기적

# 폐철도 하나가 도시 전체 살렸다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州)의 주도(州都)인 멜버른. 1851년 서쪽 약 100㎞ 지점에 있는 밸러랫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나 여기서 얻은 힘으로 호주 최고의 도시로 성장했다.

당시 금광 주변에선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면 얼굴에 남아 버석거리는 것이 죄다 사금이었고, 발길에 차이는 게 금덩어리였다고 한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왔던 정선, 영월 등 도내 탄광지역의 추억과 흡사하다.

골드러시의 중심무대로 1927년 수도가 캔버라로 옮겨지기 전까지 30여년동안 호주의 수도로 최고의 도시임을 자처했던 멜버른은 금의 산출량이 줄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멜버른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두 번째 기회를 맞는다. 빅토리아주에서 대형화물선이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포트필립만의 영향으로 멜버른은 공업 도시로 재탄생한다.

호주 제2의 무역항인 포트필립만을 통해 외국무역이 성행하면서 그 중심에 위치한 멜버른에서는 자동차, 전기기계, 항공기, 화학공업, 석유정제, 금속 등의 중화학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황금이란 지하자원에 의존했던 광산도시가 공업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주도했던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에 밀리면서 점차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상대적으로 값싼 인력에 넓은 시장을 가지고 있던 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멜버른에게는 또 한번의 시련이자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였다.

이때 멜버른을 다시 호주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도시로 변화시킨 원동력은 바로 ‘관광산업’이었다.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멜버른 남쪽 원시림 밀집지역인 단데농(Dandenong)에 위치한 ‘퍼핑빌리(puffing billy)’다.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멜버른과 빅토리아 주를 찾은 해외 관광객만 모두 6만여명. 1년 전보다 무려 52%나 증가했다. 멜버른은 순식간에 연간 300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폐철도 위에 놓인 기차 1대가 대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수입이 늘면서 자연히 도시인구도 늘고 있다. 2006년 380여만명이었던 도시 인구는 지난 3월 현재 400여만명으로 20여만명이나 늘었다. 성장세는 더욱 빨라지면서 현재는 매주 1500여명씩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광산도시에서 공업도시로, 공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변화한 멜버른은 지금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 멜버른 부활의 중심 ‘퍼핑빌리’



▲ 100년 전통의 기관차 퍼핑빌리(Puffing Biiiy)가 난간 사이로 걸터앉은 관광객들을 태우고 유칼립투스 원시림을 내달리고 있다.

멜버른을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킨 가장 큰 힘은 바로 맬버른 남쪽 원시림 밀집지역인 단데농에 위치한 ‘퍼핑빌리(puffing billy)’다. 멜버른 시민들의 자랑인 퍼핑빌리는 ‘퍼핑(puffing)’이란 공룡이 내뿜는 입김을 표현한 의성어와 호주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애칭인 ‘빌리(billy)’가 합쳐진 합성어다.

단데농은 멜버른 시민들에겐 뒷동산 같은 곳으로 퍼핑빌리는 단데농산의 유칼립투스 원시림을 뚫고 올라가는 100년 넘은 증기기관차를 부르는 이름이자 관광지 이름 그 자체다. 목재 수송의 역할이 줄어들며 사라질 뻔한 퍼핑빌리는 시민들의 보존 노력 덕택에 관광열차로 변신해 지금껏 석탄으로 땐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공룡의 거침 입김 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있다.

퍼핑빌리는 벨그레이브(Belgrave)에서 출발해 멘치스 크리크(Menzies Creek), 에메랄드(Emerald), 레이크사이드(Lakeside)를 지나 종착역인 젬부르크(Gembrook)까지 운행된다.

승객의 대부분은 에메랄드 호수가 위치한 레이크사이드에 내려 피크닉을 즐긴다. 벨그레이브에서 레이크사이드까지는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매일 4차례 운행되는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는 벨그레이브 역을 출발해 에메랄드 호수 구간까지 약 15㎞를 반복 운행한다.

기차에는 창문이 없어 손쉽게 창가에 걸터앉아 살아 숨쉬는 산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건널목, 다리 등을 통과할 때는 증기 기관을 보려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서 탑승객들과 반가움을 주고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연환경과 과거 역사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어 호주민들에게조차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도 장점으로 손꼽이고 있다.

특히 퍼핑빌리는 전체 구간을 26개의 주요 포인트로 나눠 △증기박물관 △전망대 △농장 △가족 휴양지 등 다양한 주제를 설정해 특색 있게 운행,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운영주체인 퍼핑빌리 레일웨이에 따르면 퍼핑빌리 연간 방문객은 △2005∼2006년(호주는 전년 7월1일부터 6월30일을 1년으로 계산) 24만5088명 △2006∼2007년 25만5619명 △2007∼2008년 26만7246명으로 24만명에서 26만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연평균 수입은 286만달러 규모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8억6000만원 정도다. 관광 기차 운영만으로 벌어들이는 단일 수입으로는 상당한 규모다. 여기에다 퍼핑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멜버른 일대에서 체류하면서 이용하는 숙박업소나 음식점 등에서 벌어들이는 부가수익까지 포함한다면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수치다.


# 기적의 비결은 주민들 사랑과 헌신



▲호주 멜버른 단데농 산중에 화물과 가축을 운송하던 100년 전통의 기관차 퍼핑빌리(Puffing Biiiy)가 폐쇄위기를 극복하고 관광용으로 전환돼 퍼핑빌리를 타려는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북적이고 있다.

지금은 관광철도로 변화된 퍼핑빌리는 원래 762m의 저비용 협궤노선 4개 중 하나다.

1900년대 초 오지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빅토리아주에서 건설했다. 현재 관광기차가 운행되는 벨그레이브와 젬브루크의 이 구간은 1900년 12월18일에 개통돼 운영되다 1953년 빅토리아주 정부가 운영손실을 이유로 노선을 폐쇄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1955년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결국 운행이 중단되게 됐다.

그러나 퍼핑빌리는 주민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됐다. 철로를 살리자는 지역여론이 일면서 퍼핑빌리보존협의회가 발족, 호주 각지에서 퍼핑빌리 복원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퍼핑빌리보존협의회가 주축이 된 수 천여명의 민간봉사대는 밤낮으로 산사태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고, 여기에다 민병대와 공무원까지 가세하면서 1962년에 낙석을 뚫고 멘치스 크리크까지, 1965년에 에메랄드까지, 1975년에 레이크사이드까지, 그리고 마침내 1998년 10월에 젬브루크까지 전 노선을 개통하게 됐다. 퍼핑빌리는 결국 지역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만들어낸 장엄한 결과물인 셈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주민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퍼핑빌리에 종사하는 인원이 650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앞서 언급한 수입 28억6000만원은 인건비는 고사하고 감가상각비조차 되지 않을 적은 금액이다. 그렇다면 과연 퍼핑빌리를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뭘까? 이 힘 역시 지역주민들에게서 나온다.

퍼핑빌리에서는 운전이나 정비 등 기술을 요하는 핵심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6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달에 1∼2회씩 자발적으로 이곳에 나와 역사 청소, 기념품판매, 안내, 간단한 철로보수 등 다양한 일을 돕고 있다. 물론, 보수는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다만 1년에 한 차례 가족들과 함께 퍼핑빌리 열차를 무료로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현재 이곳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존휴이(60)씨도 32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다 5년 전 주정부에 의해 책임자로 임명돼 일을 하고 있다. 존 휴이 퍼핑빌리 총책임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주민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퍼핑빌리는 오늘도 수 십여만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을 살려준 멜버른 시민들에게 보답하고 있다.


# 유명 관광지 빛낼 도심 설계와 아이디어도 중요



▲ 100년 전통의 기관차 퍼핑빌리(Puffing Biiiy)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퍼핑빌리가 멜버른 성장의 견인차라면 멜버른 도심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멜버른은 과거 전성기 때의 도심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해 타 지역과 다른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어냈고, 여기에다 퍼핑빌리라는 관광지가 더해지면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멜버른 중심가는 약 2.5㎢ 의 지역으로 ‘시티’라 불리며, 기본적으로 폭 30m 크기의 바둑판 모양으로 나눠져 있다.

이곳에는 19세기의 공회당, 주의회 의사당, 법원, 도서관, 대성당·대학 등의 이색적인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도 당시에 맞춰 관청가, 쇼핑가, 주택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시내에는 로열파크와 야라파크를 비롯하여 2400ha에 이르는 공원과 녹지대가 있어 도심 전체가 거대한 아름다운 숲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것이 바로 ‘스페이스 마케팅’, 즉 공간 활용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다.

멜버른 남서쪽 해안도로인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경치 못지않게 관광자원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지역이다. 1차대전이 끝난 뒤 귀향한 군인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길이 400㎞의 이 도로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문구를 사용한 광고 촬영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이 그레이트 오션로드에 있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12사도상(12 Apostles)’이다. 20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부서지며 빚어진 거대한 12개의 해안바위에 예수의 12제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에는 12사도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지역이 많다. 영국을 출발해 멜버른으로 향하던 배들이 절벽의 모습에 취해 정신을 잃고 다가오다 100척이 넘는 배가 좌초됐다고 해서 붙여진 ‘난파선의 해안’. 1878년 ‘로크 아드’호가 침몰해 두 사람의 남녀 생존자가 겪은 일화가 담긴 ’로크 아드 협만’. 육지에 붙어 2개의 아치로 이뤄져 있다.

1990년 1월 큰 아치가 무너져 한쪽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해서 명명된 ‘런던 브리지’. 런던 브리지에는 당시 이곳을 찾았다 고립된 불륜 남녀가 호주 TV뉴스를 통해 중계됐다가 둘 다 이혼을 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처럼 그레이트 오션로드 곳곳에서는 아름다운 풍경 못지않게 가치를 높이려는 호주인들의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숨어있다. 골골마다 전해오는 이야깃거리를 관광상품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이란 관광홍보의 새로운 트렌드로, 단순하고 일방적인 정보제공이 아니라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관광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방식을 말한다. 세계적으로는 호주 멜버른의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비롯해 ‘플란더스의 개’의 무대인 벨기에 안트워프, 핀란드의 산타클로스 마을 등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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