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떠나시렵니까. 우리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은데…”


망극지통(罔極之痛)의 심정입니다.

마음의 기둥이 무너지고, 희망의 등불이 사그라졌습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투병 속 절규가, 미몽(迷夢) 속에 갇혀 있던 우리들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싸우는 자, 지키는 자의 것이다. 싸우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고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언젠가는 온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하면 빨리 오고, 외면하면 늦게 온다”는 깨우침의 말씀을 접하며 ‘아직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더 우리 곁을 지켜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문구지만 이 말씀이 17년 전 고인의 연설내용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인은 남북동포가 어우러져 자유와 정의가 넘쳐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북풍한설에도 꽃을 피우는 인동초(忍冬草)의 의지로 폭압을 이겨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어둠의 시대를 뚫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국민은 영웅이었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서민경제’의 꽃을 피우며, ‘한반도 평화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고인의 위대한 업적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강인한 의지와 용기, 서민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함께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97년 대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을 때 일입니다.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며 손을 이끌어 주신 자리에서 정보통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게도 저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며 이 분야만큼은 우리가 한번 세계를 이끌어 가보자는 의욕을 보이셨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나서 바로 ‘지식기반경제와 정보통신강국’에 대한 청사진이 만들어지고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 대한민국’은 바로 고인의 탁월한 안목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80평생 서민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대통령님을 편히 쉬시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에 더해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아직 보내드릴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민주평화개혁세력은 아직 분열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병상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때 또 다른 분열이 예고되기도 했습니다.

통합의 중심에 민주당이 설 수 있도록 자기변혁과 준비를 요구하셨지만 아직 우리는 출발선을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저는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갈 ‘뉴민주당플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길에 나서면서 대통령님과의 토론을 고대했고, 그 과정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뵐 수 있는 시간은 하루하루 연기됐고 이제 영영 그 기회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임종을 하지 못한 자식의 심정이 이럴까요, 너무도 아쉽고 한스럽습니다.

보내드릴 수밖에 없고,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리지만 애타게 그를 붙잡는 것은 고인이 남긴 족적이 너무 크기에, 고인의 혜안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부족함이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화해를 위해 힘써 달라.”

“모두 일어나서 이 나라를, 국민들이 안심하고 사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고인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당부입니다.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미리 남기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분의 뜻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국민들의 에너지, 생각들을 담아내는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모든 민주평화개혁세력들이 머리를 맞대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인이 꿈꾸던 세상, ‘들꽃처럼 만발한 자유,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 무지개다리를 건너 통일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우리 몫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굳게 무장해야 합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모든 이들이 ‘제2, 제3의 김대중’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김대중’, 그 이름은 우리의 가슴과 역사 속에 길이 남아 대한민국을 이끄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2009. 8. 19.

국회의원 김효석

▲김효석 의원은 21일 오후 담양문화회관(사진 왼쪽)과 곡성군민회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관계자들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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