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위원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을 치르면서 새삼 느낀 점은 그의 그늘이 크고도 깊다는 것이었다. 어떤 신문은 ‘우리가 언제 다시 그만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명동성당 장례미사 때 정진석 추기경이 하시는 것을 보고 아마도 이것이 김 전대통령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던진 유지(遺志)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혹자는 “수양산(首陽山) 그늘이 강동(江東)팔십리”라는 중국의 옛말을 떠올렸으리라.

그 말을 실증이라도 하듯 김전대통령 서거 후 그동안 꼬여있던 남북관계가 하나 둘씩 풀려가고 있으니 시쳇말로 DJ의 음덕(蔭德)에 다름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현대사는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를 빼놓고는 기록자체가 어렵다. 고비고비마다 그의 이름은 정적들에게는 미움과 박멸의 대상으로, 지지자들에게는 희망의 빛으로 남았으니 그가 곧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더욱 값지게 한 것은 이같은 정치적 찬반(贊反)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IT강국이고 미국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전국민 의료보험 등 기초생활보장이니 우리 삶 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는 셈이다.

살아생전에 온갖 오해를 다 받던 동서화합을 위한 그의 열정도 서거 후에야 진지하게 평가받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난 대구쪽의 한 인사가 “영호남문제는 민간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선도적으로 먼저 물꼬를 터야한다”며 “그것이 김전대통령의 유지일 것”이라고 역설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같은 기류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도 기왕에 유지되고 있는 영호남간 교류를 더욱 확대해 지역 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면 어떨까. 현재의 ‘수도권-지방’이라는 대한민국의 발전축에 ‘동-서’ 발전축을 더하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때마침 정치권에서는 DJ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민주세력 대연합론’을 놓고 해석이 분분해지고 있다. 대연합의 주체가 특정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부터 대연합을 이루기 위한 각종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DJ와 ‘대연합’의 이름을 걸고 정파적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눈앞의 짝짓기에 골몰한다면 그것은 결코 DJ의 유지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가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을 갈고 닦았듯이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껍질을 깨고 민주 대 연합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큰 그릇을 갖추면서 거기에 모두를 담아내는 후배들의 헌신, 용기,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제2의 김대중, 제3의 김대중이라는 큰 그릇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김정현(전 민주당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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