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의 사전적 정의는 “짐승 따위를 잡기 위하여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약한 너스레를 쳐서 위장한 구덩이”라고 되어 있다.

함정은 이처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대상을 기만하거나 또는 착오에 빠지게 하는 것인데 필자가 말하려는 의미의 함정은 여기서 말하는 사전적이고 1차원적인 평면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 경직되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각의 함정, 소위 인지함정을 말하려는 것이다.

인지함정은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여 성공을 가로막거나 그에 따른 피해를 말하는데 사실 인지함정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 생활 주변 곳곳에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상당히 큼에도 사람들은 그 피해를 수치화하기 곤란한 까닭에 득실의 차이를 놓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무슨 변절이나 하는 것처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이러한 인지함정의 폐단을 크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인지함정은 동료와 상하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서양보다는 아무래도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에서 더 위험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래의 예화에서처럼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차이가 없다 하겠다.

발명가 에디슨은 미국정신의 표상이며 세계적으로 누구나 다 아는 발명가다. 그가 발명한 것이 수 도 없이 많아 발명왕이란 대명사를 가지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는 계란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려 했던 다소 엉뚱한 천재이자 노력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에디슨은 미국에서 최초의 중앙발전소를 세우고 뉴욕시 일부에도 전력을 공급했다. 당시 에디슨은 직류방식의 전력 시스템을 이용했지만 세상은 이미 에디슨이 고안한 전기(직류) 시스템만으로는 필요한 전력을 모두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산업용 전기를 원거리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에디슨이 발명한 직류방식이 아니라 교류방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때 공교롭게도 에디슨의 조수였던 니콜라 테슬라가 이러한 시대적 부조화를 알아채고 에디슨에게 교류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그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재인 에디슨조차도 이러한 인지함정에 걸려들어 새롭고 효율적인 기술을 거부함으로써 끝내 자기의 조수였던 테슬라에게 영광의 무대를 넘겨주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그 누구라도 경직되고 고착된 사고 속에서는 이처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까지도 함께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사대주의적 발상이 음으로 양으로 고착된 우리 사회에서는 상하 간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우리나라는 권력간격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써 자기의 생각을 상사들에게 제안하기 어려운 풍토에서는 이러한 인지함정에 걸릴 가능성이 더욱 농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실패한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성공사례들을 본받아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나아가 조직이나 단체에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독선과 아집을 뒤로 하는 열린 사고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할 것이다. /김신환(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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