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순가마솥식품, 쌀엿 단 내음 가득
‘툭, 툭, 툭..’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로 잰 듯 똑같은 크기로 쌀엿을 잘라내는 칠순 할머니의 분주한 손놀림은 마치 기계를 보는 것 같다.
“전국 각지로 보낼 설 선물용 물량 맞추려면 밥 먹을 새도 없당게. 쌀엿을 만들 때는 아무리 화장실이 급해도 참고참고 또 참아야해. 한명이라도 빠지면 라인이 올스톱 되버린 당께”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단내음이 가득한 조진순가마솥식품 사랑방에서 설 명절 특수를 맞아 전통 방식으로 엿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모두가 둘째가면 서러워 할 정도로 내로라하는 창평쌀엿 전문가들이다.
품이 많이 가는 전통 방식을 따르다 보니 새하얀 쌀이 검어졌다가 다시 희뿌연 속살을 드러내는 엿으로 탈바꿈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꼬박 24시간.
농민들이 피땀 흘려 지은 순수 우리 농산물만을 재료로 모든 과정을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기에 최소 4명 이상의 쌀엿 제조전문가들이 호흡을 마쳐 일 하고 있는지 이미 오래이다.
조진순 대표는 “인터넷과 전화로만 주문을 받고 있는데도 광주는 물론이고 저 멀리 바다건너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와 정신이 없어. 설에 맞춰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하고 있는데도 날짜 맞추기 힘들어서 손님들한테 미안하다”며 인심좋은 시골 아낙네의 멋쩍은 미소를 건넨다.
창평쌀엿은 좋은 쌀을 5-6시간 물에 불린 뒤 깨끗이 씻어 고두밥을 지어 엿기름과 함께 12시간을 삭혀 만든 식혜를 보자기로 걸러 식혜물만 솥에 부은 다음 적당한 화력으로 7시간을 졸인다.
그리고 청량감을 주기 위해 곱게 갈은 생강을 첨가하여 적당히 졸인 조청을 뜨거운 아랫목에서 두 사람이 맞잡고 공기를 적당히 넣어가며 늘이기를 수차례, 하얀 빛깔로 변하게 된다.
이를 초벌늘림이라고 하는데 숯불을 피우고 젖은 삼베 수건을 올려 김이나면 초벌늘린 엿을 두명이 이 위에서 10-15분 정도 늘리면서 엿의 넓이를 조정하는 작업을 두번늘림이라고 부르며 수증기가 엿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런 결이 형성, 엿 표면이 하얗게 변하고 엿의 모양을 갖추게 되는 손가락 굵기가 되면 차가운 웃목으로 옮겨 7cm 크기로 손으로 자른 다음 대나무 석작에 포장되어 소비자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는 숯불을 피워 사용했으나 숯불의 온도가 불완전 한데다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보면 엿을 늘리는 이들이 연기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여 현재는 전기포트를 활용, 위생상태를 크게 개선하고 간편한 바람넣기 작업을 통해 일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등 전통 쌀엿을 만드는 방법이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어디 내가 18살 때 시집와서 올해로 76살 묵을 때 까지 매년 농한기 때마다 쌀엿을 만들고 있는데 옛날에 비하면 지금 일은 일도 아닌데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힘들어. 그래도 놀면 뭐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한테 짐도 안되고 내 몸 움직여서 용돈 벌이도 하는데...”하고 연신 엿을 늘리면서도 속사포처럼 할 말을 다한 기복덕 할머니는 “전통기법으로 생산한 엿이 대규모로 생산되는 엿에 비해 그 맛이 빼어나다고 입소문이 난 탓에 명절 때까지는 휴일도 없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찬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웃목에서 묵묵히 기계처럼 숙련된 솜씨로 엿을 자르고 있던 박남순 할머니도 “남들이 보기에 아랫목에서 바람을 넣은 이들이 쉬울 것처럼 보이지만 한겨울에도 등짝에 흘러내리는 땀이 삼복더위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고된 작업으로 자신이 가장 쉬운 일을 하고 있다”고 한 몫 거든다.
4인 1조의 환상 같은 찰떡궁합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작업 내내 입을 굳게 다물었던 한 할머니도 “거의 10년 동안 쌀엿 가격이 1kg에 1만원 하던 것이 종사자들의 고령화와 제조단가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1만5000원으로 올랐는데도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없어서 못 팔정도 이다” 며 “햅쌀보다는 묵은 쌀이 생산량이 많고 같은 양의 멥쌀보다는 찹쌀이 2근 가량 더 나온다”고 판매동향과 차이점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처럼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생산하는 조진순 가마솥식품은 농작물 수확이 끝난 10월부터 쌀엿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확보한 후 설날을 정점으로 늦게는 3월 중순까지 쌀엿을 생산해 벌어들이는 부수입도 쏠쏠하다.
주원료인 쌀만해도 40kg 100가마를 사용, 4000근의 쌀엿을 생산하기 때문에 최근처럼 산지 쌀값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농민들의 쌀 판로 걱정을 덜어주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툭 부러뜨린 쌀엿의 바람구멍을 자랑하는 조진순씨는 “엿을 빚을 때 늘이고 꼬면서 생기는 바람구멍 때문에 깨물면 엿이 딱딱하지 않고 바삭바삭 부서지는 것이다” 며 “엿기름과 쌀만으로 단맛을 내기 때문에 설탕처럼 달지 않고 입에도 안 달라붙어서 男女老少를 불문하고 건강간식으로는 최고이다”고 자랑한다.
그는 이어 “젊은 사람들이 쌀엿을 만들려고 안한다. 嚴冬雪寒에 새벽같이 일어나 찬물로 쌀을 씻고 가마솥에 불을 지피려는 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농촌에 젊은 사람 자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며 “천만다행인 것이 쌀엿 제조법을 알고 있는 할머니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시켜 창평쌀엿의 명성을 이어 나가겠다”고 경인년 새해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소화촉진과 기억력 향상에 탁월하고 몸을 보양할 수 있는 창평 쌀엿.
다가오는 설에는 가족, 친지들과 둘러앉아 맛도 으뜸인 창평쌀엿으로 ‘엿치기’를 하며 보내보는 것도 좋은 추억 만들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창평 쌀엿은 조선시대 양녕대군이 창평지역에 낙향하여 지낼 때 함께 동행했던 궁녀들이 전수해 준 것으로 창평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에게 선물할 때 사용한 엿으로 유명하다.
특히 먹을 때 바삭바삭하여 입안에 붙지 않고 먹고 나서도 찌꺼기가 남지 않으며 맛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며 제조 원료인 엿기름은 맥아를 싹을 틔어 만든 것으로 맥아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함유되어 주로 식례를 만들 때 당을 분해하는 용도로 사용하가 민간요법으로 위장병이나 소화불량인 사람들은 엿기름을 끓여 보리차처럼 마시기도 했고 산후복통이나 가슴이 답답한 경우, 불안 초조할 경우 엿기름가루를 하루에 3번 물에 타 먹이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종대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