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씨의 잃어버린 꿈
담양군 월산면에 사는 K씨.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60~80년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며 농촌을 지키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한 세대다.
한 평생 자식들만을 위해 살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만 바라보며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 그도 올해부터는 아들집 딸집 돌아다니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었다. 일생에 어디 한 번 마음 놓고 놀러 다녀 본 적 없고 항상 일에 매달려 쫓기 듯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자식들도 다 잘되고 의사 사위도 보고 했으니 ‘이제는 내 인생을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때 K씨의 눈에 들어 온 것이 ‘경영이양보조금제도’.
제도에 대해 알아본 결과 나이가 되는 올해부터는 농어촌공사에 땅을 맡기든 팔든 농어촌공사에서 하자는 데로 하면 월 20만원은 나올 것으로 계산이 섰다.
그러면 큰돈은 아니지만 두 내외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의 논이 홍수조절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와 함께 속 편히 살겠다.’던 꿈을 앗아간 홍수조절지 때문에 K씨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날 며칠 잠을 이룰 수 없었던 K씨는 하룻밤에도 몇 번씩 쓰린 속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던 중 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홍수조절지를 하는 한국수자원공사에 내 땅을 팔든 경영이양(보조금사업)을 하는 한국농어촌공사에 팔든 나라에 파는 것은 똑같으니 되도록 10년 동안 연금처럼 돈을 받을 수 있는 농어촌공사에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답은 예상대로였다.
‘농림수산부 농가소득안정추진단’란 곳의 사무관은 이렇게 답했다.
“경영이양보조금이 지급되려면 그 토지에서 계속 농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논이 홍수조절지로 들어가면 그럴 수 없기에 이는 처음부터 불가하다”는 것이다.
즉, 이미 ‘홍수조절지 사업시행공고’가 난 순간부터 그 지역에서의 경영이양보조금제도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행여 농어촌공사가 이를 모르고 경영이양보조금 계약을 했다하더라도 홍수조절지 관련 4대강사업이 신법이고 특별법이기 때문에 우선하며 이에 따라 토지는 홍수조절지로 수용되고 경영이양보조금으로 받은 돈과 영농보상금 및 토지가격을 상계한 뒤 사건은 마무리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전남지사 보상담당은 긴 질문에 여러 말도 없다.
전화기 속 격앙된 목소리는 “어차피 수용되니 빨리 하는 것이 좋고 다른 사람들은 다 계약해 50억이나 풀렸으니 알아서 하라”며 “바쁘니 전화 끊고 면사무소에 가보라”고 득의양양이다.
높으신 분들 답변이야 법적으로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 말년 맘 편히 살겠다던 K씨의 꿈은 어떻게 하고 한 평생 정성 들인 땅을 내놓는 심정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나.
K씨는 “경영이양(보조금제도)은 논을 안 팔아도 되므로 ‘땅을 팔았다’는 허탈감이 없을 것 같아 좋았는데 이제 땅이 없으면 농부가 무엇에 기대고 살아야하냐”며 고개를 떨구었다.
축 처진 어깨로 먼 산을 바라보던 K씨는 “지게 질 나이가 되면서부터 한 평생 발 담갔던 그 황금들녘이 이제는 콩 한 줄 심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휭 하다”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서영준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