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 환 (본지 편집자문위원)
나는 “인생은 고해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면서 살아왔다.
이 말을 자주 해왔다는 것은 내 삶이 그만큼 피곤하였든지 아니면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삶의 푸념을 애써 위로해주려고 하였든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아울러 이 말을 평소 자주 해왔다는 것은 긍정적 요인보다는 부정적 요인이 내 삶의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삶에 대한 번민과 고통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게 겪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의 시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더 심화될 것이라는 사회학자의 시대 흐름에 대한 예견에 많은 사람들은 걱정을 넘어 암담해 하기까지 한다.
하긴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요 삶이란 고통도 하나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어떤 종교든지 삶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말하지 않는 곳은 없다. 또한 퍽이나 많은 유명 인사들이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서처럼 매사에 긍정적 사고를 갖고 신념을 세우며 나아가 미래의 아름다운 꿈까지를 말한다.
엊그제까지 행복전도사로 활동해왔던 최윤희 씨!
그분은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가져라”고 하면서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의지와 행복을 강조해 왔던 분이다.
그런 분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선택했다.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던 행복은 어디가고 끝내는 좌절 속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논리와 현실의 괴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큰 것이 아닐까? ‘자살은 죄악’이라는 종교적 계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지성인으로서 그 분의 선택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리의 주변을 하번 살펴보자. 가신 분 보다 더 많은 번뇌와 고통 속에서 병들어 신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러는 죽고 싶어도 부모 형제, 혈육의 걱정 때문에도 마지못해 살고 있고, 거미줄보다 못한 희망에 살고, 나아가 하루하루 연명에 급급한 도심 속 노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며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哲人들의 주장처럼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행복을 찾기 위한 것”으로 집약된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운명론에 결부시키고 있지만 나는 행복은 운명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운명을 개척해 가듯 행복 역시 노력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주변에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행복한 삶은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에서 약간 비껴나 긍정적 사고와 폭넓은 이해, 풍부한 사랑과 끝없는 용서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살아간다면 행복의 파랑새는 늘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