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안松岸 국승준鞠承駿

△본적: 담양읍 양각리 △연령: 61세 △직업: 정부양곡가공업(사장) △학력: 담양동초등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 명예졸업생, 서울중동학교, 일본 명치대학교, △경력: 正訓隊潭陽隊長, 지방자치제실시 초대담양읍장, 자유당 담양군감찰위원장, 관상토지개량조합창설자이자 조합장, 관산보기념비건립위원장, 담양여자중학교설립추진위원회부위원장, 민주공화당 제6지구당부위원장, 담양군행정자문위원장, 담양경찰자문위원, 담양군번영회상임고문, 담양양곡가공합명회사사장

潭陽 唯一의 啓導者 / 광주학생운동 주역

山戰水戰 百戰을 겪은 노장老將이 세상을 달관達觀하고 나온 여유餘裕 있는 품위品位라고나 할까. 무엇이든 부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는 自信과 지혜知慧 있게 보이는 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오십대 신사로 보이며 젊은 정력적精力的 건강健康을 과시誇示해주는 이른바 ‘영국신사英國紳士’로 불리어지는 분 바로 그가 담양의 명사 국승준 씨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국승준 씨는 이 고장 담양을 대표하는 名士이자 계도자啓導者, 經世家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담양 지주계급地主階級도 토지개혁土地改革과 함께 몰락沒落하였다. 그러나 국승준 씨는 담양의 신흥재벌新興財閥들과 함께 재색財色을 보이지 않고 어깨를 겨누면서 경제공존經濟共存하고 있는 유일唯一한 인물人物이기도 하다.

국승준 씨는 鞠참봉 옹의 손자답게 財를 管理하며 人格을 定立함으로써 問安의 긍지를 살리고, 자랑할 수 있는 단 한분 자손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영고성쇠榮枯盛衰하는 政治의 기류氣流,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역사歷史의 흐름 속에 독야청청獨也靑靑. 착실着實하게 자기인격을 성장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 속에 지도자상을 부각浮刻시키며 시대적時代的 민의民意의 계도자로서 愛國과 愛鄕, 反共과 승공勝共의 기치를 다듬어온 潭陽의 政治 經濟 社會係의 명사지도자名士指導者다.

또한 그는 검소儉素를 생활신조生活信條로 삼고 價値의 수긍首肯 아니면 行動하지 않는 信念派이며 每事에 세밀細密 정확正確하다.

人生 世界 民族 國家 安保 등 時代觀에 대하여 자기철학自己哲學이 定立되어 있는 達人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십여년간二拾餘年間 정치政治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뭄을 입지 않고 청청할 수 있는 영광榮光과 기쁨은 이 같은 달관된 人格의 定立에 기인基因함을 확신確信한다.

담양읍 羊角里에서 여조麗祖 절신節臣이자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 中의 한 분이며 상서尙書 복애伏崖 국유鞠?의 第二十一代孫으로 潭陽校를 거쳐 光州高普 二年 在學 중 光州學生事件으로 옥고獄苦를 치름과 동시에 퇴학退學되어 서울中東學校 卒業 後 日本에 유학留學하여 明治大學에서 修學하다.

8.15해방 후 광주학생사건에 희생犧牲된 애국충정愛國衷情을 감안勘案하여 光州西中의 名譽卒業狀이 수여授與되기도 하였다.

오늘의 국승준 씨의 국가관國家觀 민족관民族觀이야말로 어린 학창시절學窓時節의 反日 반제투쟁反帝鬪爭을 통하여 이미 부식扶植되어 있었으리라.

八一五 海防의 감격感激과 환희歡喜는 표현表現할 길이 없었다. 국승준 씨의 민족주의이념民族主義理念은 확고確固하여 6.25 當時 정훈대담양대장政訓隊潭陽隊長에 취임就任하고 담양수복재건潭陽收復再建에 혁혁赫赫한 공功을 세웠고 자치제自治制 초대初代 담양읍장潭陽邑長에 재임在任하면서 주민복리증진住民福利增進에 희생犧牲 봉사奉仕했으며 관상토지개량조합官上土地改良組合을 몸소 창설創設하여 보수報酬 없이 四年間 청렴조합장淸廉組合長 봉사조합장奉仕組合長으로 명예를 떨쳤다.

특히 전천후사업全天候事業으로서 관상보官上洑를 설치設置하여 몽리농민蒙利農民의 숙원宿願을 풀어 영세불망永世不忘의 공을 세웠다. 국승준 씨는 정계政界의 巨星으로서 공화당共和黨 군부위원장郡副委員長을 역임歷任하면서 정당책임정치政黨責任政治를 구현具顯함에 있어 양사良師로서 크게 각광脚光을 받아왔으며 군내 갖가지 행사마다 빠짐없이 참가參加하여 애국애족愛國愛族의 國家觀을 부식扶植하는 등 민심계몽民心啓導에 진력盡力해 왔다.

또한 국승준 씨는 自身의 거주부락居住部落의 횃불이기도 하다. 즉卽 양각계羊角契를 창설創設하여 十원 저축운동貯蓄運動을 시작始作, 이답里畓 이십칠두락二十七斗落을 마련하는데 성공成功함으로써 이정세里政稅 없는 마을, 근면勤勉 협동協同하는 마을로 성장발전成長發展시켰다.

이곳 住民은 年一回의 선진지先進地 시찰視察 관광단觀光團을 조직組織하는 등 즐거운 낙원樂園을 이룩해 놓았다. 이 마을 앞에는 마을住民의 정성精誠으로 건립建立된 ‘송안松岸 국승준鞠承駿 영세불망송덕비永世不忘頌德碑’를 볼 수 있다.

▲ 국승준 씨는 올해 97세로 담양읍 양각리 자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담양군노인회장을 지내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부인은 전북 익산의 벌열가문인 함열 조씨로 이름은 점영 씨이다. 부인은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내외는 아래로 아들 홍근과 진근과 딸 오근을 두었다.

장남 홍근 씨는 별세했으며 진근 씨는 양각리에서 도정업을 운영하고 있다. 딸 오근 씨는 당시 이정우 전북도지사 댁으로 혼인했으며 셋째 자부로 들어갔다. 국승준 씨의 큰며느리인 김부현 씨(72)는 현재 전통 음식 명인으로 담양은 물론 전국에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제3회 순천 낙안읍성 음식축제’에서 ‘이바지 석작’으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담양 양반가의 전통음식만들기와 상차림 양식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담양국씨 종부로서 음력 정월에 가내 손님을 대접하는 ‘교자상 차림’을 재현하고 있는데 이는 만석군 집안의 유려한 상차림을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또 그녀가 만든 갖가지 향토음식은 상업적 광고 없이도 전국에서 찾고 있다.

김부현 씨는 “앞으로 담양 양반가의 예절과 전통가옥을 체험하며 깊은 맛이 일품인 담양국씨 가문만의 음식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며 종부로서 시댁의 전통양식을 널리 알리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국승준 씨의 자손들 또한 번성해 각각 건설업과 병원(광주 말바우 소재 국종수 통증클리닉), 미술품 및 수입미술용품점(서울 이태원 소재 ‘Second Hotel’), 골프연습장(광주여대 앞 송호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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