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환(본지 편집자문위원)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참으로 많다.

우선 이글의 주제인 절제와 맥을 함께하고 있는 ‘인내’에서부터 시작하여 더 이상 논할 여지가 없는 ‘자유’와 ‘사랑’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좋은 가치들이 우리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필자가 그 많은 주옥같은 가치 중에서 주제를 ‘절제’로 선택한 것은 그 중 군계일학의 가치가 바로 절제라는 확신 때문이며, 나아가 필자의 삶에서 절제하지 못해 지금도 안고 살아가는 허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절제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령을 초월하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며 지식의 유무를 떠나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스펀지 형태의 사탕)를 하나씩 주고 15분 후까지 먹지 않으면 한개 더 준다고 했지만 600명 중 400명이 참지 못하고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때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보다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더욱 성공하여 살고 있다는 통계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절제하지 못해 폐인이 된 경우도 흔하다. 술을 절제하지 못해 알콜 중독에 빠진 사람들, 담배를 끊겠다며 수없이 결의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여 폐가망신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인들은 관능에 치우쳐 사회적 안전으로부터 치명타를 당한 경우도 있다.

하긴 이 모두가 생각대로 쉬운 일이라면 ‘생즉고’ 산다는 것을 누가 고통이라고 이야기 했겠는가!

이렇듯 온갖 시각과 관능적 유혹 속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때 한층 가치가 있는 절제는 이성이 전제된 자신과의 의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절제를 극기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는지 모르겠다. 자기의 욕망을 스스로 잘 조절하여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절제 !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던 어느 철인의 말처럼 우리에게 절제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짐승의 삶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절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전제인 까닭이며 우리는 절제를 통하여 인격의 완성에 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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