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환(본지 편집자문위원)

믿는대로 된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했던 조엘 오스틴의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삶은 부정하는 삶보다는 긍정하는 삶이 훨씬 풍요롭고 진취적이며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

필자가 이처럼 단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나 심리학자이길 떠나 이는 보편적 상식이기에 그렇다.

우리가 웃거나 기분이 좋을 때는 우리의 몸에서 ‘엔돌핀’이 나온다고 한다. ‘엔돌핀’이 면역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이제 너무 흔한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불쾌하거나 부정적 감정일 때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생성되어 혈압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화를 가속화시키고, 몸속의 산소를 축소시킨다고 하여 이를 일명 “악마의 호르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학술적 논리나 세상의 이치가 이러함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을, 칭찬보다는 ‘비판을 하기위한 비판’을 앞세우려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띠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울러 ‘믿는 대로 된다’는 ‘긍정의 힘’이나 더불어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종교적 신앙의 힘이 설득력이 없다고 한들 분명한 것은 부정보다는 긍정적 사고가 우리 삶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개연성은 이 시대에 커다란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에 부정적 시각이 높은 이유는 인간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적 의식보다는 타인의 삶은 아랑 곳 없이 자기만 잘살면 그만 이라는 자기본위 발상이 우선시 되고 있는 ‘사회적 환경’ 탓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누가 만들어 가는가?

최우선은 나 자신이 만들고, 우리들 가정이 만들며 , 나아가 학교가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예외가 없다 그가 교육자이든, 범법자이든, 심지어 어린아이이든, 우리들 모두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엊그제 어떤 기업인의 ‘긍정’에 관한 글을 접했다. 그분의 말대로 우리사회는 ‘문제를 보는 사람은 많고, 목표를 보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긍정적 자세로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결국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하였으며, 부정적 사고로 점철된 사람들은 어떤 보상은 없고, 다만 허탈함 속에서 자괴감만이 속없는 가슴을 채울 뿐이라는 사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한 이것이 대개는 부정한 의식들의 결말이기도하다

끝으로 의식의 문제는 사업처럼 있어야 투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자기의식으로 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어떤 실체적 위험은 없다. 다만 ‘사랑과 미움’ ‘칭찬과 멸시’ ‘처단과 용서’ 이러한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바로 독자들의 몫일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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