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향약으로 마을 공동체를 이루다 - 담양 운수대통마을 윤영민 위원장

▲운수대통마을로 더 유명한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저심마을.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저심마을. 담양에서 28km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은 담양읍에서 30여분 거리에 있고, 화순 북면과과 곡성 옥과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동네 뒤쪽으로 해발 612m의 수양산과 만덕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안고 있고, 해발 300여 미터의 위치에 있어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된 산골마을이다.

40여 가구에 8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 최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에만 해도 주민 대부분이 70대 중반이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 이하가 8명이나 되고, 50대 이하가 전체 주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는 마을. 도대체 이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저심마을은 이제 운수대통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8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뒤 마을 주민들의 합의를 통해 마을 이름을 운수대통마을로 바꾼 것이다.


<구름산에 대동세상의 대통을 이루자>


저심(楮深)마을은 원래 마을이 멧돼지 형국이라 저심(猪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에는 멧돼지 형국에서 구시도 있었지만 멧돼지의 피해가 많고, 멧돼지가 주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 닥나무 저(楮)로 바꾸어 저심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은 닥나무가 많아서 일제시대 때까지는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닥나무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예로부터 대농인 지주가 없었으며 밭농사와 누에치기 그리고 종이 만들기로 생업을 이어온 마을이었지만 구한말에는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병사를 모아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주요 활동 무대로 삼은 의로운 마을이기도 하다.

2008년 저심마을을 운수대통마을로 이름을 바꾼 것은 운산리의 운자를 따고, 물이 맑아 수자를 따서 운수라 짓고, 대동세상을 이루기 위해 소통을 넘어 대통을 한다는 의미에서 운수대통이라고 했다.

대통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을 상징하기 위해서도 적절하여 주민회의를 통해 결정 한 것이다. 대통은 소통을 초월해 주민들이 상호 존중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친구 따라 마을에 들어온 윤영민 위원장>

운수대통마을에 처음으로 변화를 일으킨 사람은 서울 생활을 접고 귀농한 오봉록 우리콩농원 대표다. 귀농한 뒤 마을 이장을 거쳐, 행복마을 추진위원장을 맡아 녹색농촌 체험마을 선정에 기초를 닦은 사람이 오봉록씨다. 그는 서울에서 ‘되살이’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해왔고, 10여년 전 이를 실천했다.

현재 운수대통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영민씨는 친구인 오봉록 전 위원장을 따라 이 마을에 귀촌하었다.

80년대 초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뒤 용접공을 시작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장을 역임한 윤영민씨는 악화된 건강을 추스르고, 전원생활을 희망했고, 마침 친구인 오봉록씨의 권유로 운수대통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운수대통마을로 들어온 그는 지역의 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농촌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전하기 위해 [대덕 참 삶 공동체]를 설립해 ‘농업은 안 된다’는 생각과 ‘농촌은 끝났다’는 주민들의 패배의식을 바꾸는데 노력했다.

하지만 면단위 공동체는 범위와 단위가 너무 커서 마을로 돌아와 마을을 중심으로 자연학교를 운영하고, 체험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신향약 운동으로 공동체를 이루다>


2005년 오봉록 이장은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은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풍토를 이루기 위한 마을 운영규약 즉 마을 법을 제정했다.

마을법의 기초로 삼은 것이 향약이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德業相勸), 잘못은 서로 고쳐 준다(過失相規), 예에 맞는 풍속은 서로 교환한다(禮俗相交),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에다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生命尊重) 하나를 보탰다.

마을 운영규약은 윤영민씨가 이장이 되면서 세부적인 실천덕목을 만들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세칙의 내용을 보면 ??제초제 없는 마을 만들기 ??건물 신축시 주변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집 짓지 않기 ??2층집 이상이나 너무 큰 집은 짓지 않기 등 시간이 지나도 명소가 될 수 있는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다.

윤영민 위원장은 주민 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통과 과정을 중시하여 마을의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는 주민들이 만장일치가 되도록하는 화백회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화백회의 제도는 과정은 비록 더디지만 뜻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는 훨씬 강력한 힘을 갖는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대통마을에서는 대부분의 농촌체험마을에서 하고 있는 농사나 자연체험 이외에도 역사, 문화예술, 음식문화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체험은 운수대통마을이 의병활동의 본거지임을 상기시키며 이와 관련한 역사탐방을 하고 화백회의에 대한 인식과 실습을 하게 된다. 문화 예술체험은 문인화 그리기, 한지공예품 만들기, 도예체험, 나는야 시인이라네, 짚풀공예 등이 있다.

음식문화체험은 로컬푸드와 슬로우푸드로 바르고 잘 먹고 잘사는 식습관을 체험하게 하는 것으로 콩치즈 만들기, 두부 만들기, 산야초 효소 담기, 산채음식 만들기 등이 있다.

운수대통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마을에 귀촌한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체험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도예가, 화가, 사진작가, 시인, 건축가 등이 들어와서 작은 예술인 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고 있는 오평후씨도 2007년 귀향한 시인으로 청소년들의 시작을 지도하고 있다.

운수대통마을 주변으로 최근 들어 수십여 명이 귀농, 귀촌하여 마을 주변은 젊은 세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자>


오봉록 전 위원장과 윤영민 위원장, 노동운동을 하다가 귀농한 한상원씨와 환경운동가 한성국씨 등은 농촌에서 살면서 가난을 벗어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운수대통마을은 토질이 모래땅으로 많아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고, 밭이 대부분이어서 예로부터 잡곡, 콩, 산약초 등을 많이 재배해왔고, 무, 배추 등은 고랭지에서 재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안전한 밥상과 먹거리 운동을 해왔던 그들은 이 마을이 콩을 많이 심어왔고, 콩재배에 적합한 땅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우리콩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무농약으로 재배한 우리콩으로 된장, 간장, 청국장, 고추장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재배한 콩만으로는 수요가 부족하여 부족한 콩은 이웃마을에서 사들였다. 물론 시중가보다는 비싼 가격이다. 마을 주민들은 벼농사에서 점차 콩농사로 전환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콩조합에서는 판매액의 5%를 마을 기금으로 내놓아 마을 발전에 쓰도록 하고 있다.

운수대통마을은 외부자문위원 50여 명과 명예주민 15명 등이 있어 외부와의 소통과 협력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K.T광주본부와 맺은 1사 1촌은 텃밭을 분양하여 주말이나 휴가철에 자주 마을을 방문하게 했다.

윤영민 위원장은 이 마을에 귀향센터를 세워 도시민들이 귀향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멘토가 되어 줄 수 있게 할 것이며 각자의 성향에 맞는 마을을 연결시켜주는 교량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취재는 담양곡성타임스, 장성군민신문, 시민의소리, 나주신문 공동 기획취재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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