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석(발행인)
전라남도 기념물 6호로 지정된 면앙정(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은 강호가도의 선구자이며 호남 제일가단의 대부인 면앙정 송순(1493~1583)선생이 7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하서 김인후, 금호 임형수, 옥계 노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며 90세까지 여생을 보내던 곳입니다.
송순은 87세 때(1579년) 이곳 면앙정에서 그의 과거 급제 60돌을 축하하는 잔치인 회방연을 열었습니다. 이 잔치는 임금도 술과 꽃을 하사할 정도로 성대하게 베풀어졌는데 술기운이 절반이나 취할 무렵 당시 우찬을 지냈던 정철이 가로되, 우리 모두가 이 어른을 위해 죽여(竹輿, 대나무로 마든 가마)를 매자고 제안했고 헌납 고경명, 교리 기대승, 정언 임제 등이 죽여(竹輿)를 붙들고 내려가자 뒤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감탄하여 광영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조정에서는 고위 관직을 지낸 양반들이 가마를 맨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고위층 양반들이 체통을 버리고 천민들이나 하던 가마꾼 노릇을 했다고 핀잔을 주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지위도 체면도 다 버리고 스승의 가마를 맨 이들이야말로 스승을 섬기는 본을 보여준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칭찬을 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200여년 후인 1798년 정조 임금이 전라도 유생들을 대상으로 이 이야기를 시험문제로 한 과거(道科)를 광주에서 실시할 것을 명했는데 당시 임금이 내린 과거시험 제목이 ‘하여면앙정(면앙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었습니다. 기록이 없어 장원급제한 답을 알 수는 없으되 ‘스승을 섬기는 본을 보여준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내용이 담긴 답이 장원을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면앙정에는 지금도 이같은 내용이 수록된 현액이 걸려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御製湖南校準儒生應製試題
戊午崇禎一百七十一年。 正宗二十二年 上命設道科于光州。 監司李得臣。牧使徐瀅修
詩= ‘荷輿면仰亭’
解。潭陽府誌曰。宋純號企村。二十登第。文章標望。爲世所宗。歷事四朝。退老林下。作亭家園岸上。名曰?仰亭。蓋면仰宇宙之意也。其愛君之誠。多形於篇詠。登第周甲日。設宴于면仰亭上。如新恩時。一道聳觀。酒半。修撰鄭澈曰。吾제爲此老荷竹輿可乎。遂與獻納高敬命,校理奇大升,正言林悌。掖上扶輿而下。邑宰及四隣來會者隨之。入皆嗟歎而榮之。此實前古所未有之盛事也.(컴퓨터에서 한자 지원이 안되는 글자는 부득이 한글로 표기하였음.)
그런데 이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시험을 치른 연도가 정종 22년(正宗二十二年)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정종(定宗)이면 조선 2대 임금으로 연대와 맞지 않으니 22대 정조(正祖) 임금의 오기(誤記)로 생각됩니다. 현액을 고치기는 힘들겠지만 이같은 내용을 바로잡는 안내문이라도 붙여서 역사적 사실에 혼돈을 주는 일은 막아야 하겠습니다.
덧붙여 송순 선생의 회방연에서 정철 등과 함께 가마를 맨 것으로 기록된 고봉 기대승 선생은 사실 회방연이 열리기 7년 전인 1572년(선조 5) 졸(卒)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죽여를 맸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인만큼 검증을 거쳐 잘못된 기록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