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마천루와 공존 … 관광도시 홍콩의 ‘재발견’
화려한 도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홍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높은 빌딩 숲, 화려한 경관 조명으로 대표되는 홍콩에도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세계적인 습지가 존재한다. 본지는 최근 홍콩에 도착, 곧바로 습지공원을 찾아 나섰으나 가장 먼저 40∼50층의 초고층 아파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곳에 습지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높은 습도(80%)와 후텁지근한 날씨(34℃),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스콜성 폭우가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홍콩국제공항에서 50분 가량 차를 달렸다.
홍콩섬 북쪽, 구룡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홍콩습지공원. 그런데 홍콩습지공원은 초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한가운데 있었다. 맞은 편에는 저 멀리 중국 본토 선전의 공업단지가 바라다 보이는 딥베이(Deep Bay)를 전면에 끼고 있다.
드디어 홍콩습지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가로 100m, 세로 40m, 3층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로 세워진 ‘방문자센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센터를 중심으로 64ha에 걸쳐 인공적인 습지공원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인공시설
홍콩습지공원에 들어서기 위해선 방문자센터를 거쳐야 한다. 방문자센터는 태양광을 직접 받도록 상부에 유리로 된 창을 내었고, 건물 옥상은 식물을 심어 하늘에서 내려다봐도 습지의 일부로 보이도록 설계됐다. 지열과 자연채광을 이용하고, 빗물을 이용한 절수형 변기를 갖추고, 보온성 높은 재활용 건축자재를 활용한 이 센터는 ‘친환경건축물 대상’(영국 경관연구회 주관)을 받기도 했다.
방문자센터는 특별히 가이드가 없이도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습지와 각종 동·식물 현황에서부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모습과 무차별적인 자원 낭비 등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습지와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끔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방문자센터를 빠져 나오자 습지가 펼쳐졌다. 습지공원은 2개의 담수습지, 3개의 우드랜드(목책로)와 주변 습지, 맹그로브 숲, 갈대, 갯벌 등 생태적으로 조성했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군데군데 3층 철골구조인 탐조대가 있다. 나무로 외부를 감싸고 있어 마치 나무집처럼 보인다. 1~2층은 망원경으로 새들을 관찰하게끔 했으며, 3층은 습지 전체를 육안으로 조망한 게 특징이었다.
중간쯤에 다다르면 맹그로브 숲을 꾸며놓고서 습지 위로 목책로를 만들었다. 목책로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뻗으면 민물 게가 잡힐 듯 하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 위의 연꽃은 색색으로 빛을 내고 물 아래선 각종 어류들이 노니는 모습을 보며 한가로이 감상에 젖어본다. 한마디로 사람과 습지의 공존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최고의 생태체험장인 것이다.
◆개발억제·습지보전 ‘완충역할’
이처럼 홍콩습지공원은 자연적인 요소에다 인공적인 구조물을 가미해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습지공원으로 인해 시민들이 쉽게 습지를 접하고 그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사실, 습지공원을 조성한 데는 ‘전략’이 숨어 있다.
습지공원이 들어선 주변은 주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췄다. 이 일대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뉴타운을 계획하자, 개발에 대한 반대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홍콩정부는 신도시 개발을 억제하고자 아예 땅을 매입해 버렸다. 개발을 막자는 의미와 습지를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작용한 셈이다.
그리고 지난 2006년 습지공원을 만들어 개장하게 됐다. 습지공원을 만드는데 든 비용은 토지매입비를 제외하고 무려 640억원에 달했다. 단순히 돈만 투자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친환경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건축이나 시설에 반영하게끔 했다. 이제, 습지공원은 홍콩의 대표적인 자연으로 손꼽히는데 ‘홍콩 에코투어’의 대명사가 됐다.
이와 관련 홍콩 농어업자연보호청(AFCD) 로 릴리안 고급주관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재정적 수익을 내기란 사실 어렵다”면서도 “홍콩정부는 ‘도시민의 녹지공간 확보와 자연환경(습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 차원에서 이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습지를 관광자원화” 미래 안목
현재 홍콩습지공원은 지방공원조례에서 ‘특별지역’으로 정해 놓고 있다. 새들의 서식처 및 먹이터를 제공하기 위해 민물담수지역으로 만들고 습지보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습지공원의 목표는 ▲보전 ▲교육 ▲관광 등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릴리안 주관은 “습지공원에 2600명의 자원봉사자가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며 “여러 사회단체와 자매결연이나 후원을 맺고 있으며 워크숍, 습지의날 행사, 전시회, 문화제 등 한해에 이벤트만 11차례에 달한다. 이런 이벤트에 참가하는 이만도 2만명을 웃돈다”고 말했다.
부럽기만한 자원봉사 인력 풀에 대해 괜시리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단순히 습지를 ‘보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서식공간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게끔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습지공원은 교육과 여가를 목적으로 한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됐다. 무엇보다 철새들과 야생식물이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습지의 숨결마저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습지를 이렇게 관광자원화시킬 수 있구나”하고 절로 감탄을 하게 한다. 홍콩정부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문화적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상을 본 것만 같아 인상깊었다.
/양상용·조상현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