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전남도의원)
현직 구의원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가슴 아픈 기사를 보았다. 같은 지방의원으로서 생활고라는 단어가 거슬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의원 생활을 이곳에 글로 다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의원되기 전까지 모아 논 재산이 충분하지 않다면 세비만 가지고 가족을 돌보면서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반 주민들은 지방의원들이 명예직에서 봉급제로 바뀌면서 많은 돈을 받는 줄 안다. 사실 적은 돈은 아니다. 보통 기초의원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연 3~4천만 원, 광역의원은 4~5천만 원 선이다. 전남도의회의 경우 5천만 원이 조금 못된다.
4년 계약직 공무원인 지방의원은 퇴직금, 연금, 자녀 학비보조 등 공무원들이 가진 그 어떤 보장도 없다. 또 주민들과 항상 접촉해야만 하는 지방의원으로서 활동비 등을 생각하면 그 정도 봉급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해 나가기 힘들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직 구의원이 자살한 것은 생활고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죽을 만큼 아픈 다른 여러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어떤 이유든지 용납될 수 없다. 특히 모범을 보여야 할 현직 구의원으로서는 더 그렇다.
그런데 내가 더 가슴 아팠던 것은 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았을 때이다. 지역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현직 구의원의 죽음 앞에서도 대부분 댓글은 지방자치와 정치인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 실정이나 지방자치로 인한 폐단들을 생각할 때 그 댓글들이 아주 틀린 말들은 아니다. 요즘도 일각에서는 지방의회 무용론을 말하며 지방의회 폐지와 단체장 관선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직은 각 지방마다 선거 때문에 지역이 시끄럽고, 갈라지고 여러 진통과 부작용을 겪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민주주의 기본이며 학교인 지방자치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 없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도 형식적이라도 지방자치는 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이제 20년 조금 넘은 걸음마 단계이고 과도기적 현상에 있다. 5,60년대에 지방의회만 부분적으로 실시했지만 제대로 된 지방자치라고 볼 수 없다. 현재 지방자치의 여러 가지 폐단은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자질 문제도 크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물론 자질 문제는 단체장이나 의원들 스스로 더 처신 조심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주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러한 후보자를 내는 각 정당들의 공천제도나 정치 구조도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 큰 구조적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아직도 경제적으로 중앙정부에 예속되어 있고, 법적으로도 독립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 지원 없이는 공무원 월급도 주지 못할 자치단체가 허다하다. 특히 우리 전남이 그렇다. 지방의회는 더 그렇다. 내가 도의원이 된 지 3년이 지났다. 도의원 3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커다란 한계도 느꼈다.
전남도 1년 예산이 6조를 넘고 전남도교육청까지 합하면 10조 정도 된다. 그 많은 예산을 보좌관 한 명도 없는 도의원 혼자 철저하게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그보다 더한 것은 지방의원들을 보좌해야 할 지방의회사무처가 집행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 국회는 의회사무처가 행정부로부터 완전 독립되어 있지만 지방의회사무처는 집행부 소속이다. 집행부 단체장이 의회사무처 인사권을 행사한다. 그런 공무원들이 누구의 눈치를 더 보겠는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대다수 여론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적인 문제는 애써 모른 체 하면서 그저 지방자치와 정치인만 탓한다. 지방 자치를 탓하고 정치인 자질을 논하기 전에 이런 불합리한 제도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정치인 자질문제는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고 주민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를 통해서 바꾸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정치인 자질은 저절로 향상 되어간다.
유권자들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하면 정치는 곧 바로 선다. 스스로 그러지 못하면서 민주주의 기본인 지방자치와 정치인만 탓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구조적으로 지방자치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 진 현행 지방자치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