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석(발행인)

습진 날 물빛 화선지처럼 온 세상의 풀빛 색채를 몽땅 빨아들인 대숲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죽녹원에는 크고 작은 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대나무가 참으로 많습니다. 각기 다른 크기와 모습들의 대나무, 바닥을 기는 차나무, 경비병처럼 간간이 서있는 측백나무들까지 서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대나무만큼이나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한바탕 어울려 한세상 살다 갑니다. 꽃들처럼 흐벅지게 웃어보지도 못하고 질펀하게 살지도 못하는 짧은 삶이 바로 인생인줄도 모르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아웅다웅거립니다. 좁은 굴레에 갇혀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다투기도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잣대로만 남을 재며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합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편을 가르기도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는 목청껏 소리 높여 틀렸다고 매도하기도 합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 '내 생각과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어떤 사고에서 기인된 것일까요?
필리프 사시에의 책 중에 '똘레랑스'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똘레랑스'는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파생된 단어로 프랑스인의 깊은 사상적 기저(基底)입니다. 영어로는 tolerance로 관용, 아량, 인내를 뜻합니다. '똘레랑스'는 서로 다른 의견을 절충해서 합일점을 찾는 타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서로 다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똘레랑스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을 바꿀 수도 있지만 바꾸지 않고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품성의 하나가 아마도 이 '똘레랑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일수록 경향은 더욱 심합니다.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상대방의 말과 생각에 귀 기울이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서로 다툴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녹원에서 만난 자연들은 서로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고 키가 작다고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치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내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