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홍길동과 임꺽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의적들이다. 비록 국법을 어기며 도적질을 했지만 부패한 정부와 탐관오리에 저항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을 위해 싸웠기에 위인들로 간주된다. 두 사람 모두 실존인물이지만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홍길동은 조선 중기 연산군 시절의 인물로 자세한 행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1612년 허균이 지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통해서 난세의 영웅이 되었다.

임꺽정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 강점기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홍명희가 조선일보에 13년간 연재한 소설 덕분이다. 임꺽정은 천민출신으로 1559년부터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를 살해했지만, 약탈한 양곡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면서 민심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1562년 관군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했다. 

이몽룡과 박문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암행어사들이다.  한 명은 허구의 인물이고 한 명은 실존 인물이다. 이몽룡은 소설 <춘향전>의 등장인물로 과거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탐관오리인 변학도를 징벌하는 역할을 한다. <춘향전>의 정확한 창작 시기와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영조와 정조 시절 판소리를 통해 널리 퍼지기 시작해 소설로 정착되었다.

박문수는 1691년 고령 출신으로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해결사였던 암행어사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발행된 작자미상 소설 <박문수전>에 의해 암행어사로 소개되었지만,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약한 적은 없다고 한다.

홍길동, 임꺽정, 이몽룡, 박문수.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당시 만연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홍길동과 임꺽정은 반란을 통해, 이몽룡과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대표되는 왕권을 통해 지역에 만연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해소하려 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은 건국 이후 정착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사이에서 형성된 균형관계가 깨졌기 때문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지방사족(士族)들은 유향소, 향약, 서원, 향교 등 다양한 자치기구를 통해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을 견제하며 향리와 하층민을 지배했다. 사림(士林)세력은 성리학에 근거한 규율체제인 향약(鄕約)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각 고을마다 향규(鄕規)를, 각 촌락마다 동약(洞約)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 왕권이 강화되고 사림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지방통치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왕권의 강화는 지방에서 수령권의 강화로 이어졌다. 지방사족의 고유 권한과 영역이었던 향약, 향교, 서원의 운영을 수령이 주도했고, 사족들이 관할하던 향촌사회 조세권과 인사권이 수령에게 이양되었다. 수령들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고 견제하던 지방사족의 역할 역시 급격히 축소되면서, 수령권의 통제를 왕권이 담당해야 했다. 구언, 상소, 상언, 격쟁을 통한 국왕의 지방민심파악이 잦아졌고, 수령감찰을 위한 어사파견도 활발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중앙정부의 지방지배체제가 강화되면서 조선의 국력은 크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수령에 대한 견제나 통제기능이 미약해지면서, 수령의 부패와 전횡이 극심해졌다. 1881년 한 유생이 고종에게 보낸 상소는 수령들의 횡포로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8도의 감사들과 각 고을의 원들은 모두 다 옳은 정사는 할 줄 모르고 백성들의 재물을 밑바닥까지 긁어서 빼앗아가기만 일삼으므로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다 물과 불 속에 빠져서 ‘이놈의 세상이 언제나 망하려고’하는 형편”이라며 호소하고 있다.

홍길동과 임꺽정, 이몽룡과 박문수 모두 지방수령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살던 조선시대는 수령의 권한이 강화되고 자치세력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민생은 파탄에 빠진 시대였다. 그 결과 외세침탈에 저항할 힘조차 갖지 못해 일본의 보호국과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은 지방민이었다. 일본의 침탈과 한일병합에 반발하는 의병활동 등이 지방 향회(鄕會)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다. 지방의 구국 의병 운동은 일제로 하여금 더욱 철저하게 지방자치를 억압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지방자치를 정착시키는 것은 고유의 전통을 되찾고 식민잔재를 청산해야할 조국 후손들의 역사적 의무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담양곡성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