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전남도의원 담양)

박근혜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만 기어코 국정화 확정고시를 강행했다. 국정화 세력의 주장은 "현재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검정교과서는 각종 오류와 더불어 좌편향 된 민중사관의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정부에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결정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검정교과서가 어떤 기준에서 좌편향이고 국정화 결정이 어떤 근거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인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들만의 확신에 차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했고 실행에 옮겼다.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지금의 국정화 세력과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편찬에 들어갔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편찬에 앞서 왕에게 청한다. “지금의 학사대부가 진한(秦漢) 역사에 대하여는 널리 통하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또 삼국의 고기(古記)로 말하면 누락된 것이 많아 후세에 권계로 삼지 못 하니 역사를 완성하여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하소서.”

하지만 당시는 신채호가 '일천년래 최대 사건'이라고 주장한 묘청의 난이 김부식 일파에 의해 진압된 직후였다. 그 당시 묘청 일파의 정치적 목표는 부패하고 무기력한 개경 귀족 대신 서경인 중심의 새 정권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묘청일파는 금국정벌론 등 자주적 기백과 내정혁신의 의욕도 보였다. 신채호는 이 난을 “낭불양가(?佛兩家)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난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애석해 하였다.

어쨌든 묘청의 자주적 기백과 진취적 사상에 깜짝 놀라 유가주의와 중국 사대주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삼국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김부식의 확신에 찬 주장에 인종은 역사 편찬을 명했고 1145년 한국 최초로 고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역사서 삼국사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대한 문제점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가장 크게 지적 되고 있는 삼국사기의 첫 번째 문제점은 김부식은 우리나라 기록을 불신했고 중국 기록만을 옳은 기록으로 보고 삼국사기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는 김부식은 유교사상을 나라의 이념으로 삼고 중국을 숭상하는 것으로 정권의 안정을 도모코자 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기 전에 다섯 번이나 중국을 다니면서 중국역사서를 섭렵했다. 사실 중국이 고조선 시대나 고구려 시대에 당한 치욕을 자신들의 기록에 써 넣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도 김부식은 자기나라 역사를 쓰면서 중국시각에서 우리나라에 대해서 그저 귀퉁이에 조금 흘려 쓴 것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주워 담아 얼기설기 엮어 역사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 삼국사기에 단군신화를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맨 첫 페이지에 나와야 할 단군신화가 없다. 그 이유는 김부식이 가지고 있는 유교주의 사상에 있다. 만약 삼국유사에도 단군신화가 실려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단군신화에 대해 영영 모를 수도 있었다. 김부식 개인적 소신과 사상 때문에 삼국사기에 단군신화가 실려 있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서가 국정화 되었을 때 집필자의 사상이나 이념으로 역사서가 편협 되고 왜곡 될 수 있다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을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문제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신라중심의 역사를 편찬했다는 것이다. 김부식은 신라 귀족 출신이었다.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당태종과 양만춘의 안시성 싸움 등도 중국 측 사료만 참고하여 고구려의 승리를 축소하고 왜곡하여 기록했다. 그래서 삼국사기가 편찬 되고 나서 140년이 지난 후 1285년에 불승 일연이 삼국사기에 문제점을 직시하고 삼국유사를 편찬한다.

삼국유사는 한국의 고대 사회의 역사, 종교, 문화, 풍속, 언어 등을 연구하기 위한 기본서로 삼국사기와 함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정사의 성격을 지닌 삼국사기와는 달리 이 책은 향가나 이두로 표기한 글도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등 신라 향가 14수는 균여전에 실린 11수와 함께 한국고대문학사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이처럼 일연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같은 국정화 된 역사서가 담지 못한 우리 역사의 절대적 가치가 있는 단군신화 등 역사, 종교, 문화, 풍속, 언어 등을 담아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서는 하나의 이념이나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한 가지 국가적 목표로만 가는 국정화 역사서가 아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검정화 역사서로 가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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