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작동원리이다. 누구든지 권력을 획득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려면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물론 다수가 항상 올바르거나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자였다. 최근 영국 국민들 다수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가보다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평가가 훨씬 많다.

그런데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 원리가 잘 작동하질 않는다. 숫적으로는 소수인 중앙이 다수인 지방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사람들은 전국 인구의 20%에 불과하고, 20대 국회의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중 서울지역 의원은 49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행정, 경제, 문화, 언론 등 국정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울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왜 다수인 지방사람들이 소수인 서울사람들을 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사람들이 정치권력과 경제자본과 문화적 기득권을 독점하는 비결은 지방에 있다. 바로 지방의 분열이다. 지방사람들이 다수의 힘을 가지려면 서로 연대해서 서울과 경쟁해야 하지만 그럴 힘이 없다. 군사독재 시절 설정해 놓은 영호남 간의 대립구도가 견고하게 남아있는 현실에서, 지방이 연합해서 서울의 횡포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반면 서울 사람들은 손쉽게 결집한다. 노무현 정부가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하자 서울시민들은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동원해 수도이전을 무력화시켰다. 지방민의 결집은 없었다. 당시 서울사람들과 싸운 사람들은 충청도민들로 국한되었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 문제도 지방의 분열양상을 잘 보여준다. 각 지방의 이익을 우선 챙겨야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적은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방이 된다.

지방이 연대하지 않고는 서울의 권력 독과점에 저항할 수 없지만, 타 지방과 연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지방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 발표 전에는 호남선 KTX를 두고 대전시와 호남 간의 대립이 부각되었다. 서울 사람들은 이러한 지방 간의 갈등을 방관하고 조장하면서, 지방의 낙후성과 무능함을 은연중 강조시킨다. 물론 이러한 고정관념은 서울사람들이 장악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반복 재생산된다.

다수인 지방이 소수인 서울의 지배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사람들이 문화적 차별과 종속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지방사람들을 촌사람들이라고 비하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도 누구하나 나서서 문제제기하는 지방사람들이 없다. 지방의 장년층은 내 자식만이라도 서울사람 만들겠다고 공을 들인다. 지방의 청년들은 자신의 고향을 숨기고, 고향을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성공하리라는 판타지에 빠져 노량진 고시촌의 거류자가 된다.

지방의 문화적 종속은 미디어를 통해서 재생산된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만든 신문과 방송이 지방사람들의 눈과 귀를 대신했다면, 이제는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인터넷 대기업들이 끊임없이 서울중심 문화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지방거주 디지털 세대들에게 지역방송이나 지역신문과 같은 지역미디어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 덕분에 서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만드는 미디어 문화상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서울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서울로 일자리를 구하러 갈 즈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2류 국민으로 차별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누구에게 하소연도 제대로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지방민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차별, 학력차별, 연령차별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지방차별에 대해선 아예 침묵하고 있다.

지방의 차별이 해소되려면 지방이 서로 연대해서 기득권을 내어 놓지 않으려는 서울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민들 스스로가 지방민임을, 즉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소수자임을 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타 지방민들과 경쟁하고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 연대해 다수를 만들어야 한다. 그 때에야 비로소 서울과 지방이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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