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몇살이세요?” 초면인 한국인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는 질문이다. 상대방의 정확한 나이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혹은 적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반말과 존대말을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하는 한국에서 그 보편적 기준이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원숙하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그런 고정관념이 통했다. 변화보다는 전통이 중시되던 시절, 연륜과 경험은 거칠고 힘든 세상을 사는데 매우 유용하고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자식보다는 부모가 옳고, 후배는 선배의 지시를 따르고, 신입사원보다는 부장과 임원이 더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려 노력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나이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다. 많은 나이가 부담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역사와 전통보다는 변화와 혁신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자유경쟁 체제에서 오래된 것은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자연 나이많은 사람에 대한 시선과 태도도 바뀌었다. 나이들어 보이기보다는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싶어하는 세상이 되었다. 노인이라는 단어대신 “어르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주름살을 두꺼운 화장으로 덮는 것처럼,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애써 감추려는 얄팍한 배려가 드러날 뿐이다.

문제는 실제 나이보다 더 많아 보이기는 쉽지만, 더 적어 보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운동이나 화장을 통해 나이보다 젊게 보이려는 것은 물론이고 성형외과에서 각종 수술을 주기적으로 받는 시대가 되었다. 피부노화를 방지한다는 기능성 화장품이나 피부미용이 거대한 산업분야로 부상했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자기 나이보다 젊은 사람처럼 보이며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노인들 사이에서 나이듦은 퇴화와 빈곤을, 젊음은 건강과 부유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는 젊게 보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노인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외국과 달리 나이가 들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크게 떨어진다. 지난 해 30만명에 달하는 영국인들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65세-79세의 연령대가 가장 행복하다는 응답이 많았고, 45-59세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미국에서 지난해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20대 초반에서 행복하다는 비율이 높다가, 50대 초반에 최저점을 찍고 이후에 다시 올라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일보가 한국, 일본, 덴마크, 브라질 4개국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60대가 되어도 행복감이 상승하지 않았다.

자식을 부양하고 동시에 노부모를 부양해야하는 50대의 고단한 삶은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대신 50대를 넘기면 행복감이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50대 이후에도 행복지수가 계속 낮아져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행복한 노후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 노인들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불안한 경제적 여건 탓이 크지만, 노인과 늙음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 탓도 적지 않다. 그들의 불만이 탄핵정국에서 태극기 시위로 분출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인들에 대한 반감이 더 증폭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노화는 모든 인간들에게 찾아오는 아주 공평한 방문자이다. 거스를 수도 속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보다 현명한 방법은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일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신체적 퇴화를 수용하고, 대신 경험과 연륜과 여유를 즐기며 산다면 한국인들도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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