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한 때 대한민국 거의 모든 자동차 뒷 좌석에서 빠짐없이 발견되는 것이 있었다. 도로교통 지도책이다. 보통 책의 두 배 정도 크기이고, 고급 종이에 천연색으로 지도를 인쇄를 했다. 책값도 당시 보통 책의 두 배 이상인 2-3만원에 달했다. 1990년대 초반 소위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로교통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운전자에게 교통지도책은 필수적인 운전 도우미였다. 덕분에 서점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로교통 지도책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소위 <네비>라는 것이 자동차 앞좌석에 장착되기 시작하면서 지도책은 빠르게 사라졌다. 원래 네비게이션은 GPS 위성항법장치가 장착된 대형 여객기에서 사용하는 장치였다. 국제선 여객기를 타면 대형 세계지도 화면에 비행기의 위치가 나타나고, 지나간 거리, 앞으로 갈 거리, 현재 속도와 고도 등을 승객들에게 알려주었다.

무선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객기 조종사들이나 사용할 수 있었던 네비게이션 장치가 자가용 운전자에게도 길잡이 역할을 시작했다. 네비라는 단어가 금방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고, 30-40만원에 달하는 고가상품이었음에도 TV 홈쇼핑 채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네비가 원래 장착되어 출고하는지 여부가 호화 고급차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네비 덕분에 운전자들의 걱정과 스트레스가 크게 감소되었다.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에 지도책을 펼치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선택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선택한 길을 머릿속에 저장해야하는 힘든 일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장 빠른 길을 찾아주고, 목적지에 도달할 때 까지 상냥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네비는 신의 선물처럼 편리했다.

그러나 네비의 전성시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휴대전화가 네비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홈쇼핑 채널에서는 더 이상 네비를 팔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네비를 사용하는 운전자들이 적지는 않다. 자동차 뒷좌석에 굴러다니는 지도책을 갖다버리기가 힘들었다면, 네비를 떼어버리기는 더욱 힘들다. 훨씬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네비와 휴대전화를 함께 사용한다.

네비가 지도책에 비해 훨씬 편리한 길잡이인 것은 분명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운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가장 짧은 길은 잘 찾지만, 가장 빠른 길은 잘 찾지 못한다. 네비가 알려준 대로 갔더니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경험을 한 운전자들이 적지 않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 저장메모리를 빼내 지도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점도 불편하다. 지도 업그레이드를 게을리 했다가, 새로 생긴 과속카메라에 걸려 범칙금 고지서가 운전자에게 날라오곤 한다.

이제 길안내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네비가 해주는 세상이다. 종전의 네비처럼 주기적으로 지도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교통상황을 고려해 수시로 빠른 길을 찾아 진로를 바꿔주기도 한다. 여럿이 모이는 장소를 갈 때에는 목적지를 공유해 친구나 가족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안내한다. 운전자가 자주 가는 곳은 알아서 저장해주고, 음성으로 쉽게 목적지를 입력할 수 도 있다. 낯선 곳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 다 해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는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네비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인자동차 시대가 되면 네비가 아예 필요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IT기업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무인자동차가 일상화되면,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길을 찾아간다. 그 때가 되면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를 갖다버려야 할 것이다. “교통지옥”도 “주차난”도 모두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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