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변호사,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우리는 불신이라는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간의 믿음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덴마크 청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얼마 전에 본 덴마크의 행복비결에 관한 영상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청년이 있을까?

흔히 행복하다고 하는 사회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신뢰’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다.

앞서 언급한 영상에는 덴마크 시민들에게 정부를 신뢰하는지를 물어보는 장면도 나온다. 어떤 사람은 80% 신뢰, 어떤 사람은 90-95% 신뢰한다고 응답한다. 이것은 객관적인 지표로도 증명이 된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지수조사에서 덴마크는 늘 ‘세계에서 가장 부패없는 국가’ 중에 하나로 언급된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걷는다. OECD국가중에서도 조세부담률이 가장 높다. 대한민국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조세부담률이 높은 수준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덴마크의 모습은 선순환의 모습이다. “부패없고 투명한 정부 => 시민의 신뢰 =>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세금징수 => 높은 삶의 질 구현”이라는 선순환의 고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 선순환의 고리속에서 덴마크 시민들은 덜 불안하고,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부패하고 불투명한 정부 => 시민들의 정부ㆍ정치에 대한 불신 => 세금걷는 것에 대한 저항감 => 낮은 복지수준과 불평등 심화”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미래가 불안하고, 어떻게든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각자생존의 길을 찾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상황에서 복지, 교육, 환경 등에 필요하다고 해서 세금을 더 걷겠다면,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정부를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이 당장 쏟아질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부패없고 투명한 정부, 신뢰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은 모두 이런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국가들이다. 덴마크 뿐만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복지제도만 잘 갖춰진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를 가진 나라들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정치권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정부기관들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해 보면,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부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국민세금을 어디에 쓰는지 감추는 경우들이 많다. 부패없는 정부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 정보공개인데, 그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촛불’로 바뀐 게 무엇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국회, 지방의회의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경북 예천군의원들이 국민세금으로 해외연수를 가서 가이드를 폭행하는가 하면, 최교일 국회의원은 영주시 예산을 지원받아 미국 뉴욕에 가서 스트립바에 출입했다. 경기도 과천시의원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가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갔다가 들통났다.

그래서 지금은 시민들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각자 자기 지역부터 부패없고 투명한 지역으로 만드는 활동들을 시작해 보자. 가칭 ‘우리 지역 세금도둑잡기’ 활동을 시작해 보자. 거창한 조직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보공개청구라고 하는 제도 하나만 활용해도 감시활동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뿐만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도 감시할 수 있다.

몇가지 대표적인 항목들부터 감시를 시작하면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업무추진비, 민간인국외여비, 민간단체보조금 등 고질적인 예산낭비 항목들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해 보면 된다. 지방의회에서 사용하는 업무추진비, 의정운영공통경비, 의원해외연수비도 감시할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용하는 예산에 대해서는 국회에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고, 정치자금 사용내역에 대해서는 지역선거관리위원회에 청구하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별로 몇 명만 모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역시민단체나 지역언론이 해도 된다.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 각자생존의 사회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정부ㆍ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작게라도 여러 지역에서 시작을 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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