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변호사,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대한민국은 참 모순된 나라이다.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없애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의 청계천, 을지로 일대는 소규모의 공장과 가게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생산하고 유통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그와 연관된 일자리까지 합치면 5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있다고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곳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90%가 아파트로 채워지는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제1의 과업처럼 되어 있고, 도시재생이 유행어처럼 쓰이는 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모순은 곳곳에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서 비수도권 곳곳에 공항, 도로,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그렇게 지역균형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수도권집중을 심화시킬 일은 더이상 벌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수도권 규제완화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서 120조원을 들여 추진하겠다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이 지난 3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를 통과했다. 한편으로는 지역균형 발전을 얘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서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을 하려면 수도권의 인구가 분산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수도권에 대규모로 주택을 추가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보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이고, 서울.경기의 주택보급률도 100%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3기 신도시가 집값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집값은 보유세강화, 다주택 소유 규제 등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서 안정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3기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는 바람에 수도권 내에서도 갈등과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한 지역 내에서도 3기 신도시에 반대하는 목소리, 찬성하는 목소리가 엇갈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모순은 더 있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친환경자동차를 보급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광주에서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으로는 경유차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동차시장이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고 있고, 독일에서는 경유차를 앞으로 퇴출시키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경유차 공장을 짓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돈’과 ‘자본’,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이다. 지금 거론한 일들만 해도 모두 재벌 등 대기업들,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지독한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

청계천.을지로를 밀어버리고 건설하는 고층건물들에는 대우, 현대같은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개발업자가 사업을 주도하며 세입자들을 밀어내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서 건설하는 공항, 도로, 철도 건설공사도 결국 재벌건설사를 포함한 대형건설사들이 하게 될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하는 공사이니 대기업으로서는 이만큼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장사가 없다. 수도권규제완화를 통해 돈을 버는 것도 대기업이고, 3기신도시 개발과 수도권주변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들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도 결국 대기업들이다. ‘광주형 일자리’ 역시 현대자동차라는 재벌대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이다. 당장의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에만 관심이 있고 국가공동체의 장기적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 땅값과 집값올리는 정책, 재벌대기업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정책은 미래를 파괴하는 정책이고, 사회의 공동체성도 파괴하는 정책이다. 

이런 구조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청소년. 청년세대들과 세입자, 사회적 약자들뿐이다. 그나마 집 한 채라도 수도권에 있는 부모세대는 당장 집값이 올라서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자식세대는 자기 집을 자기 힘으로 마련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44%에 달하는 무주택자들에게 뛰어오른 집값은 절망의 벽이 되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는 외면한 채 벌이는 개발사업들은 지금도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지만,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멈춤’과 ‘전환’이다. 일단 멈추고 지금까지 잘못 달려온 방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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