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상 현(칼럼니스트, 곡성군 오곡면 출신)

설마 대한 아이스하키 협회장에 당선되겠느냐 했다. 그러나 역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었다. 대한 아이스하키 협회 대의원들은 재벌 회장의 사촌 동생이기에 그가 당선되면 거액의 돈을 들여 시설 확충과 신생팀 창단을 해줄 것이라고 믿고 투표한 듯하다.

하긴 한국 스포츠 협회 중 자금난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국민의 공분을 샀고 형사처벌 전력까지 있는 장본인이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석해주고 당선되는 과정까지 갖은 비호를 해준 대한 아이스하키 협회 임원 및 대의원들의 처사는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돈이면 다 되는 대한민국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돈이 궁하면 예산을 더 달라고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호소하든가 아니면 같은 재벌가여도 논란이 없고 인성이 좋은 다른 분한테 출마해주시라고 부탁을 하지 원.

최씨는 10년 전 일명 ‘맷값 폭행 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후 신속히 진행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형을 받아 풀려난다. 이유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는 것. 피해자와 합의한 것은 백번 양보해서 이해가 가지만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는 것이 감형 이유에 포함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1심 선고 후 2개월 간 국민의 지탄을 더 받았으므로 그만큼 감형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재벌가 범죄에 특별관용을 베풀어주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전형적인 판결 관례다. 

피해자는 당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두 가지 선택 안을 두고. 첫 번째 선택 안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므로 절대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 어떤 형이 나오든 최씨가 실형을 살게 한다. 두 번째 안은 괘씸하고 또 괘씸하지만 만약 합의 제의가 들어오면 고려해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 판에 나 혼자 정의를 외쳐본들 알아주지도 않을 것 같고... 결국 두 번째 안을 선택한 피해자는 합의에 응하게 되고 이것은 항소심에서 피고인(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10년 전 나는 내가 돈이 많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음 싶었다. 돈이 많다면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주고 대신 최씨와의 합의에 절대 응하지 않도록 설득하여 최소한의 정의라도 실현하고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야 함을 사법부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사회적 위치가 있다면 정치권과 시민단체에 호소하여 피해자 지원금을 모집하여 전달해주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가해자 회사 불매운동을 벌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돈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나의 가정환경을 탓해본 적이 없는데 당시 나는 생애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곤궁했던 삶을 심히 탓했었다.

최씨는 돈 많은 집안에서 나고 자랐기에 자기 분을 풀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협박하고 때릴 수 있다는 신념을 견지할 수 있었다. 최씨는 돈이 많았기에 피해자의 엉덩이 살이 뜯겨나가고 다리 전체가 피멍으로 물들 때까지 몽둥이질할 수 있었다. 최씨는 돈이 많았기에 신속히 항소심을 받을 수 있었고 징역형에서 집행유예 형으로 감형 받았다. 최씨는 지금도 돈이 많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대한 아이스하키 협회장에 출마하고 당선될 수 있었다. 다 돈 때문이다. 이게 다 최씨가 가진 돈이 너무 많아서 벌어진 일이다. 그나저나 국민들은 무슨 죄인가?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피곤하고 우울한데 돈 많은 최씨 때문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덤으로 받아야 하니.

나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아이스하키를 사랑한다.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대비전1 그룹 A대회 최종전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혈투 끝에 2-1로 승리하고 2018 IIHF 월드챔피언십 승격(세계 1부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수백만 원을 들여 조카들과 함께 여러 경기를 직관하고 목이 쉬도록 열띤 응원을 한 추억이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본선에 한국 아이스하키 팀이 출전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후원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최씨가 협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불가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해결 방법은 둘밖에 없다. 최씨가 스스로 사퇴하든가 아니면 대한체육회가 인준을 거부하여 재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최씨가 버티면 대한민국 아이스하키의 위상은 추락되어 전 세계인의 조롱을 살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요, 그동안 대한민국 아이스하키를 아끼고 사랑해 온 수많은 이들에게는 한없는 비애와 자괴감만 안겨줄 것이다.

최씨가 끝까지 버티면 돈이면 다 되는 대한민국이 되어 버린다. 돈으로 다 살 수 없는 것도 있고 돈으로 다 되는 것도 없어야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 나는 분노하고 묻는다. 대한 아이스하키 협회는 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지 않는 것인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출범한 현 정부는 왜 이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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