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출신, 천재적인 가야금 연주가
춘사의 노래 /작사 임일남
♬ 전라도 땅 한가운데 죽향골 금성은
강산이 수려하고 흐르는 물이 맑아서
물산이 풍성하고 의식주가 흡족하니
흥 많은 전라도 사람들 예능이 발현되네
금성땅에 태어난 춘사 성금연은
하늘이 낸 가야금 연중의 귀재
가야금 열두줄에 정령을 실어서
하늘의 기를 살려 사람을 감흥케 하네
춘사의 가야금 산조는 경쾌하고 맛깔스러
대중의 감춰진 감흥을 불러 내세우니
가야금 산조는 세계 방방곡곡 울림되고
국위선양 선봉되는 대한의 자랑이네 ♬
제45회 담양군민의 날 기념식 오프닝 행사로 치러진 제1회 성금연예술제.
성금연이 누구인데 담양에서 예술제를 하는거지?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100년 전 1923년 5월 7일, 담양군 금성면 원천리 97번지에 태어난 춘사 성금연(春史 成錦鳶, 본명 성육남) 명인은 ‘옛 소리를 지키며 새로운 소리를 재창조한 천재적인 가야금 연주가’라는 찬사와 더불어 첫 가야금 산조 예능보유자(1968)다.
1935년 광주로 상경해 가야금 명인 조명수에게 가야금 산조와 병창, 양금, 판소리를 배웠고 이듬해에는 안기옥에게 가야금, 신쾌동에게 거문고, 정정렬에게 판소리, 최옥삼에게 가야금과 소리를 배우며 우리 국악을 폭넓게 이해하고 대중에게 전달을 해왔다.
서울에서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시기 경기민속 음악인 지영희와 결혼해 음악 활동을 함께했다.
1960년부터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 교사로 오랫동안 봉직하였고 196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예능보유자에서 해제되었다.
여기까지는 포털검색에 ‘성금연’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자료.
춘사 성금연 선생은 1968년 대한민국 최초로 지정된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안기옥, 조명수 등에게 가야금 산조, 판소리 등을 배운 후 가야금 산조를 경쾌하고 화려하게 재구성하여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어 현재 김죽파류와 함께 가야금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가락이다.
대표적인 망부가 ‘눈물이 진주라면’을 비롯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의 ‘꽃 중의 꽃’으로 평가받으며 문하에 황병주, 지성자, 지순자, 지윤자는 가야금 긴산조 연주를 통해 성금연류 특유의 매력을 전함으로써 음악을 품격있는 위치에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배우자이자 국악인 지영희 선생이 발전적인 국악교육을 위해 즉흥성이 많은 가야금 선율을 악보화해 성금연의 연주를 남긴 악보는 현재까지도 시대에 따라 보강·재구성되면서 ‘가야금의 바이엘’이라 불리우며 교육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영희 선생과 더불어 국악계의 대부와 대모, 으뜸과 버금이라 불리우지만 정작 고향 담양에서는 ‘성금연’이라는 이름조차 낯설다.
다양한 악기들 가운데 가장 절대음감을 뽐내며 첫소리를 잡아내던 그는 방송 여기저기 안보이는 곳이 없었고 미국 하버드대와 카네기홀 등 유명한 극장에서 독주회를 갖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야금 산조 발표, 파리 세계민속예술제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해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국위 선양에 크게 힘써왔는데도 말이다.
1975년 국가로부터 받았던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기능 보유자증을 반납하고 하와이로 이주한 이후에도 교포들을 대상으로 가야금을 교습하고 연주활동을 놓치 않아 ‘추상’, ‘새가락별곡’, ‘눈물이 진주라면’ 등 주옥같은 가야금 창작곡을 발표하며 1986년 지병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가야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 기예능보유자에서 해제가 되었고 그의 가락을 정통으로 전수받은 이는 두 딸밖에 없어 지영희 선생이 정리해 둔 악보의 일부와 자녀들의 귀와 손에 남은 가락 외에는 기록이 많지 않다.
성금연가야금산조 이수자이자 딸 지윤자씨는 “두 분이 살아계실 때에는 어머니가 더 높이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 역전이 되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민속악을 악보로 정리하는 등 학구적인 면이 강해 돌아가신 후에도 흔적이 남아있어 부모의 기예능보유자 복원을 위해 사방팔방 노력을 할 때에도 아버지는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말한다.
제1회 성금연예술제를 이끈 지윤자씨는 LA에서 ‘지윤자 가야금학교’, ‘우리가락선교회’, ‘지영희 시나위미주지부회장’ 등 대한민국 전통 무형문화 해외 명예 전승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태교가 어머니의 가야금이던 그는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쉬움이 남는 부모의 명예를 복원하는 일이 마지막 사명이라 믿고 지난 10여 년간 미국과 한국을 바삐 오가며 부모의 예능보유자 복원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다행히 2017년 국악 현대화의 선각자인 아버지 지영희씨의 공적이 인정되어 국민훈장 2등급에 해당되는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뒤이어 고향 평택에서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체계적인 연구 및 다양한 업적을 콘텐츠화하기 위한 ‘지영희기념사업회 설립’, 국악관, 정기공연, 경연대회, 학술대회, 일대기 발간, 관련 학술연구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고 지난해에도 ‘지영희 학술토론회’가 개최됐다.
하지만 어머니 성금연 선생에 대해서는 ‘성연금가락보존회’는 설립되었지만 별다른 콘텐츠나 선양 사업이 없는 상황.
그래서 어머니의 고향에 찾아와 군수와 문화관광부 등의 문을 직접 두드리며 담양이 낳은 가야금 명인, 춘사 성금연 선생이 있음을 알리니 흔쾌히 성금연예술제와 대나무축제 초청공연 등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던 것.
부모였고 스승이었고 시대를 대표하던 예인들, 그들은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국악은 음악적 역사가 깊고 계보가 어마어마한데도 불구하고 이후 세대에게 전해줄 음악 교육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호응도 얻기 힘들다.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는 생기발랄하고 화사하면서도 애잔한 여성미가 특징이며 선율의 구성이 아기자기하고 리듬도 흥겨워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예술고등학교 설립에 큰 기여를 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써 국악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의 딸 지윤자 역시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가야금 대중화에 힘써온 이유가 그것.
뒤늦게나마 고향을 찾아와 ‘성금연예술제’를 개최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명예를 되찾는 것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국악에 관심있고 재능이 있는 이들을 발굴해 내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담양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품격있고 가치있는 문화예술을 더해줄 춘사 성금연의 선양을 위해 현재적 가치와 의미, 장기적으로 콘텐츠 개발과 선양사업 추진, 담양이 낳은 예술인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인문학적 가치가 높은 도시의 명성을 드높일 전략 수립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김고은 記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