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항도(추성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벚꽃이 흐드러지고 연둣빛이 들판을 물들이는 사월, 산벚나무가 이정표가 되어주는 길목마다 고요한 봄비가 내린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이 빗줄기처럼, 잊혔던 기억과 뿌리를 다시 적셔주는 길이 있다. 성급한 인파 대신 조촐한 도시락 하나 챙겨 들고 향하는 이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길이다.

그 여정의 첫 걸음은 화순군 이서면, 동복수원지 상류에 위치한 물염정(勿染亭)에서 시작된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2호인 이 정자는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조선 중기의 선비 물염 송정순(1493~1564)이 벼슬을 내려놓고 지은 이곳은, 자연과 학문이 어우러진 조선 선비 정신의 결정체다. 이후 정자는 외손인 나무송·나무춘 형제에게 전해졌으며, 정자 내부에는 김인후, 권필, 이식, 김창협, 김창흡 등 조선 중후기 문인들이 남긴 20여 점의 시문 현판이 걸려 있다. 특히 2020년 발간된 『적벽의 풍류, 물염의 철학』에서는 물염정이 남도의 누정문화에 깃든 창작의 공유공간으로 재발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염정은 단순한 풍광이 빼어난 자연속에 세워진 정자가 아닌, 과거와 현재, 자연과 사유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정신의 공간이다.

길을 담양으로 돌리면 소쇄원이 반긴다. 대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선 중기 양산보(1503~1557) 선생이 지은 별서정원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조광조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자연 속에서 삶을 일구었다. 소쇄원은 절제된 아름다움과 풍류,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이 담긴 정원으로, 조선 미학의 본보기이자 ‘자연과 벗한 삶’이 얼마나 깊고 풍요로운지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이웃한 한국가사문학관으로 들어서면 조선 선비들의 시심과 철학이 고요히 살아 있다. 송순의「면앙정가」, 정철의「관동별곡」·「사미인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은 시대를 넘어선 언어와 감성, 정신의 고향이라 불릴 만하다. 정제된 언어와 운율은 담양의 자연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낳으며, 오늘의 우리에게도 '담양소리'로 다가온다.

대덕면 장산리에 위치한 미암박물관에 이르면, 조선의 문신 류희춘(1513-1577)의 선조즉위년부터 11년간의 일기가 간직되어 있다. '미암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조선 사대부의 일상과 고뇌, 시대정신을 정직하게 담은 삶의 아카이브다. 특히 유희춘은 송정순의 여동생이자 조선시대 대표 여류시인 송덕봉(1521-1578)과 혼인한 인물로, 문필과 덕행을 겸비한 부부의 삶은 조선 선비가정의 품격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해남과 담양, 화순을 잇는 정신적 연대의 또 다른 근거이기도 하다.

담양 금성면에 이르면, 구화공 나무춘(1580~1619)의 후손들이 400여 년을 뿌리내려 살아온 세거지가 있다. 이 지역 금성산성 이래 나산에는 1610년에 조성된 효열문은 송정순의 딸인 숙인 홍주송씨의 절의를 기려 세운 정려각이다. 동악 이안눌의 제문, 월사 이정구의 행장, 택당 이식의 찬문이 남아 있으며, 이후 정조·순조·헌종대에 이르기까지 중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 정려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사대부 여성의 삶과 덕, 그리고 후손의 기억을 되살리는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이다. 이곳에는 곧 국립정원문화원이 개원을 앞두고 있다. 정원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정신과 생태의 조화로 구현되는 시대. 그 흐름 속에서 불로리(不老里)의 과거와 미래는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담양에서의 기록은 장성으로 다시 이어진다. 담양읍을 지나 삼서면 우치리에 이르면, 조선의 충·효·열 정신을 기리는 삼강문이 서 있다. 충신 나통서, 효자 나봉서, 열녀 옥천설씨와 공산이씨를 기린 이 정려각은 세월을 넘어 공동체의 윤리와 정신을 지켜온 상징이다. 그리고 나주 문평면 동원리의 송재사는 송재 나세찬(1498~1551)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02년에 건립된 사당이다. 이후 금호 임형수, 체암 나대용, 나덕원, 나무송, 나무춘이 추배되며, 금성나씨 문중과 나주 지역사회 간의 깊은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단지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제향(祭享)’이라는 의례를 통해 후손들이 하나의 혈맥과 정신의 흐름 속에 있음을 확인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운 공동체의 의미와 삶의 윤리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시제는 더 이상 의례적 관습이 아니라, 정체성과 책임을 다시 묻는 오늘의 질문이며, 세대 간 대화를 잇는 문화적 실천이다.

오늘날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주의의 확산을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일수록, 뿌리를 기억하고, 선조의 삶에서 배워야 할 이유는 더욱 뚜렷해진다. 청렴과 절의, 효행과 공공을 위한 헌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더 강력히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것은 곧 ‘사회적 공헌’을 삶의 기조로 삼고, 실천적 오블리주(Oblige 도덕적 의무와 책임 있는 리더십)를 현실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그 빛은 곧 효도의 실천이며, 지조를 지키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삶의 자세다. 선조들은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 그 가치를 몸소 살아냈고, 우리는 그 자취를 따라 걸으며 배운다. 한 장의 족보, 한 채의 정자, 한 편의 시문, 한 번의 제향에 담긴 것은 단지 전통이 아닌, 세대 간에 이어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허례가 아닌 진심으로, 자랑이 아닌 책임으로, 기억이 아닌 실천으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이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다.
이 봄,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 들고 조용히 자연 속을 걷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뿌리와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우리 삶의 방향이자, 공동체의 내일을 밝혀주는 가장 고귀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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