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치맥축제, 폭염을 유쾌하게 요리하다

몇 년 전 뉴스에 등장한 대구의 폭염 실험 장면은 강렬했다. 아스팔트 위에 계란을 깨자 노른자가 익어버리는 모습은 대구에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남겼다. 평균 36도가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이 도시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불러모으며 ‘치킨과 맥주의 도시’로 이름을 새기고 있다.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치킨도 맥주도 아니였다. 오히려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끌었던 건 예상 밖의 공간이었다. 

축제장 한가운데 등장한 거대한 ‘놀러와요 에그섬’ 코오롱 야외 음악당은 ‘놀러와요 Egg섬’으로 구성돼 축제 최초로 초대형 계란후라이 에그돔을 설치했다.

이는 폭염과 우천 속에서도 관람객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계란후라이와 에그돔이라는 조형물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고전 농담을 축제의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장치가 됐다. 뉴스 속 아스팔트 위에서 계란후라이가 익던 장면은 이제 대구치맥축제를 알리는 포토존으로 바뀌었다. 

‘대프리카 워터피아’,‘치맥여행자거리’,‘치맥 더 클럽’은 축제의 설렘과 흥겨움을 책임진다면 ‘놀러와요 에그섬’은 관객들이 과열하지 않고 흥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완충지대로 기능하며 축제의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공간으로 작동했다. 

축제의 열기에서 벗어나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거나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관객의 모습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원초적 즐거움이 넘치는 무대 앞 풍경과 대비되며 축제 속 또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뜨거운 밤에 관람객이 과열되지 않도록 여유있는 공간을 배치하고 중간중간 감정을 환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는 결과적으로 축제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체류 경험의 깊이를 더했다. 
반면 대나무축제는 죽녹원과 관방제림 일원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녹지형 축제로 매년 수많은 관람객이 몰리지만 실제 관람객의 반응은 엇갈린다. “볼거리가 여느 축제와 비슷하다”,“부스나 체험이 중복된다”,“동선이 길고 중간이 허전하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물론 축제 자체의 문제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때때로 관방제림에서는 요가수업도 열리고 피크닉 매트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넘친다. 

추성경기장 담빛음악당에서는 담양문화재단에서 개최하는 음악제와 영화제가 열린다. 죽녹원은 그 자체로 힐링 공간이 된다. 문제는 이런 개별장면들이 축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맥페스티벌에서 에그존이 축제 안에서 ‘리듬’을 설계한 것처럼 담양의 훌륭한 공간들 역시 하나의 콘셉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축제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흘러다니고 어디서 머무르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퍼지는지가 중요하다. 

곡성 세계장미축제도 마찬가지다. 풍부한 볼거리와 잘 분산된 동선은 장점이지만 치맥축제의 에그존처럼 주제와 맞닿은 쉼의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축제가 치러지는 5월에도 따가운 햇빛에 장미라는 주제 맞는 감성적인 그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100만명 이상이 찾을 수 있는 축제는 콘텐츠를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공간을 어떻게 연결짓고 흐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축제의 기억이 달라지고 밀도는 깊어지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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