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산타 테클라, 700년 전통이 빚어낸 ‘시민의 자부심’
신앙에서 시민 축제로, 불꽃과 인간탑이 빚은 지역축제
스페인 카탈루냐의 항구 도시 타라고나(Taragona)는 매년 9월 ‘산타 테클라(Santa Tecla)’ 축제를 개최한다. 1321년 성녀 테클라의 성유물 봉안 이후 이어져 온 축제는 종교적 전통과 시민의 열정이 결합된 복합형 축제로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전통과 현대, 신앙과 공동체가 맞물려 움직이며 한국 지역축제가 참고할 수 있는 운영 철학과 실행 체계를 제시한다. 공동취재단은 지난 9월 23일(한국 기준) 축제가 열리고 있는 타라고나시를 방문해 산타 테클라 현장을 취재했다.
700년 전통의 타라고나 산타 테클라(Santa Tecla Tarragona) 축제는 ‘시민 주도-행정 조력’이라는 독창적 거버넌스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축제는 종교 의례, 인간탑, 불꽃 퍼레이드 등 500여 개 프로그램을 145개 시민단체가 직접 기획·운영했으며 특히 어린이 전용 축제 '페티타'는 다음 세대에게 참여를 통한 시민교육을 제공하며 전통 보존과 현대적 혁신을 동시에 이뤄낸 지속가능한 축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타라고나 구시가지 중심 플라사 데 라 폰트 광장은 700년 전통의 산타 테클라 축제 개막을 알리는 '크리다'를 보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로 주변 건물 발코니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루벤 비뉴알레스 시장이 “비바 타라고나, 비바 산타 테클라, 그리고 비바 엠페리토!”를 외치며 축제의 공식 개막을 선언했다. 그는 산타 테클라 축제를 “타라고나 사람들의 영혼이 가장 뜨거워지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며 시민들의 질서 있는 참여를 치켜세웠다. “수많은 시민이 거리에 나왔지만 아직 사고는 없었다. 시민 의식이 이 축제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13일간의 대향연
축제는 9월 12일부터 24일까지 13일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아침 9시부터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전통 악기 연주가 시작되고 거리마다 ‘테클라 타파’ 천막이 펼쳐져 타라고나 전통 음식 ‘에스피네타 앰 카르고린스(멸치 스튜)’와 ‘마마데타’를 판매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인간탑쌓기. 빨간 셔츠를 입은 ‘카스텔라(인간탑 팀원)’ 약 200명이 광장 중앙에 모였다. 드럼 소리가 울리고 가장 아래층부터 차례로 쌓이기 시작했다.
“피냐(Pinya)!” 누군가 외쳤다. 가장 아래층을 뜻하는 이 단어는 카탈루냐어로 ‘함께 버티기’를 의미한다. 20~30명이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버티는 동안 2층, 3층, 4층이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헬멧을 쓴 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꼭대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아이가 두 손을 하늘로 쭉 뻗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뒤섞였다.
카스텔러의 한 팀원은 공동취재단에게 “인간탑은 공연이 아니라 철학이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탑이 완성된다. 이게 바로 우리 공동체의 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업도 나이도 다르지만 탑 안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서로의 몸을 감당하면서 신뢰를 배운다”고 의미를 전했다.
■ 어린이가 주인공인 축제 ‘페티타’
9월 22일 오전, 플라사 데 라 폰트 광장. ‘산타 테클라 페티타(작은 산타 테클라)’가 열렸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축소형 거인 인형과 소형 용이 등장하고, 초등학생 악단이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타라고나시교육청은 페티타를 공식 학습활동으로 인정하고 매년 전체 축제 예산의 7%를 지원한다. 2021년부터 14~18세 청소년에게 축제 운영권 일부를 이양하는 '청소년 기획단'도 운영 중이다.
■ 불 속을 달리는 사람들
9월 23일 밤 11시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코레포크(불달리기)'가 시작됐다. 대성당 앞 광장에 악마 복장을 한 시민 수백 명이 모였다. 긴 장대 끝에 불꽃을 매단 악마단이 앞장서고 뒤로는 불을 뿜는 용 ‘드락’, 여성 용 ‘비브리아’, 황소 ‘보우’가 따랐다.
드럼이 울리기 시작하자 불꽃이 터지고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목은 순식간에 화염과 폭죽 연기로 가득 찼다. 얼굴을 때리는 열기에 관광객들은 뒤로 물러섰지만 타라고나 시민들은 오히려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다.
악마단의 일원인 안나는 “코레포크는 두려움을 다스리는 집단 훈련이다, 불은 위험하지만 우리가 통제하고 공유하면서 신뢰를 쌓는다” 말했다. “경찰도 소방관도 우리를 통제하지 않아요. 우리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시민이 기획하고 행정이 돕는다
축제 운영의 핵심은 '민속문화운영위원회(세르구치 포퓰라르)'다.
약 60개 단체가 모인 위원회는 1년 전부터 회의를 열어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전통공연, 인형극, 불놀이, 인간탑 등 분야별 분과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의사결정은 만장일치 합의제다.
물론 불꽃, 소음, 쓰레기, 상업화. 매년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23년 폭죽 낙하 사고 이후 타라고나시는 축제안전 전담부서를 신설해 모든 불꽃 행사는 보험 가입이 의무화됐고 주요 행사장마다 응급의료 부스가 설치됐다.
하지만 타라고나시는 이를 강압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축제 거버넌스 회의를 열고 주민대표, 상인회, 시청이 함께 모여 개선안을 합의한다. 올해는 다회용 컵 보증금제, 여성·청소년 안심부스, 소음 가이드라인 개정이 새로 도입됐다.
■ 10억 투입해 100억 효과
타라고나시에 따르면 올해 축제 투입 비용은 약 10억원이며 직·간접 경제효과는 100억원(약 600만 유로)으로 추정된다. 축제 기간 호텔 점유율은 90% 이상 달하고 2000여 명이 축제 현장에서 일하고 봉사한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체류형 전환'이다. 낮에는 성녀 행렬 오후에는 인간탑과 가족 프로그램, 밤에는 코레포크와 미식 행사.
시간대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배치해 방문객이 하루 이상 머물도록 설계했다.
또한 대성당과 주요 광장을 축으로 하고 골목과 주변부에 분산 무대를 배치해 상권을 도시 전역으로 확장했다. 매년 디자인을 바꾸는 기념품은 조기 품절되고 지역 식당들은 특별 메뉴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 전통을 지키되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산타 테클라 축제의 중세 의례와 도시 퍼레이드의 골격은 변하지 않지만 주변 콘텐츠는 해마다 신설되고 있다.
올해는 친환경 컵, LED 조명, AR 체험관이 새로 등장했다. 또 1979년 민주 지방정부 출범 이후에는 잊혀져간 의식무용과 전설 속 동물 모형 행렬을 시민들이 복원시켰고 2010년 인간탑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공동취재단 담양곡성타임스 김고은 기자, 남해시대 전병권 기자, 한산신문 박초여름기자, 해남신문 노영수 기자, 홍주신문 한기원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